세상의 창

진보가 희망이 될수 있으려면

송재봉 2008. 9. 29. 00:09

송재봉



진보에게 희망이 생기려면..

송재봉(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서민들은 삶이 고달프다며 당장 고단한 삶의 무게를 덜어달라고 아우성인데 이들의 삶을 개선하겠다는 우리사회의 진보·개혁세력은 그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니 그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경제는 견실하다 외환보유고가 넘쳐나고 수출은 사상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면서.. 다른 한편에선 신자유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피부에 와 닫지 않는 구호만 외치고 있었다. 서민들의 처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배려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래서일까 지난 대선에선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 동반몰락 하였다. 그 자리를 신보수와 원조보수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그 원인을 되돌아보면 서민의 요구와 동떨어진 정책과 언어였다. 사실 노무현 정부 5년 간 지속된 386정치인과 개혁세력의 주요관심사는 정치적 개혁주의를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 분야에 있어서 많은 성과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상의 의제에 집중하는 개혁정권이 시민들의 눈에는 세계화와 개방화 등 시장중심적 구조개혁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양극화의 심화 등 새로운 사회경제적 문제들이 대중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상황을 외면하는 것으로 비춰지게 되었다.
 즉 사회의 구조변화에 대응해 ‘사회경제적 민주화’ 의제를 전면화 했어야 함에도 그러하지 못하였다. 서민의 요구는 양극화 완화, 안정된 일자리, 부동산가격 안정, 사교육비 경감 등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 방법을 진보세력에게 찾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음에도 현실에선 대중의 요구와 동떨어진 정치개혁과 정쟁적 구호로 보수세력과의 격돌이 전개되면서 대중으로부터 서민의 삶을 개선할 수 없는 무능한 세력이라는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어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는 계급·계층적 동질성과 소통의 핵심적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진보세력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유식한 단어를 남발하면서 언어자체가 대중과의 소통을 가로 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사회 각 분야의 혁신을 주창하였으나 여전히 혁신의 개념도차 정립되지 않았으며, 일반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노인바우처제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회투자국가론, 개혁 실용논쟁,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 모를 수많은 영어단어의 남발 등 화려한 구호와 자신의 전문지식을 뽐내려는 관념적인 주장을 되풀이 하는 과정에서 진보세력은 서서히 대중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서민 대중과 가장 친근해야할 집단이 서민들과는 다른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혁·진보세력은 서민의 벗이란 이미지를 오히려 보수세력에게 빼앗기고 엘리트주의자로 비춰지게 되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충격적인 대선패배 이후에도 중도 개혁세력을 포함하는 진보진영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자파의 정치적 생존에만 매몰되어 있는 인상이다. 내심 이명박 정권도 경제에 대한 높은 국민기대치에 비해 고용 없는 성장, 양극화 심화 등 서민생활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곧 위기에 봉착할 것이며 이는 진보세력에 기회로 작용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안주하려는 안일함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서민들이 왜 성장주의 담론에 깊숙이 편입되게 되었는지, 서민들은 왜 진보세력에 대해 절망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사회적 기업 유누스 그라민 은행장의 “사람들이 거리에서 굶어 죽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현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경제이론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강의실 안에서 보호 받은 채 모든 해답을 다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게 오만한 일임을 깨달았죠. 나는 가난한 이들을 스승으로 삼겠다고 결심했습니다.”는 말의 참뜻을 진보세력들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서민의 처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한 진보는 이미 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의 가치야 말로 이명박 당선자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강조하고 있다는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봉사와 헌신으로 자연스럽게 권위를 얻는 섬김의 리더십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이 말의 키워드는 겸허함과 경청, 봉사다. 그 기초위에 시민이 스스로 신자유주의 개발주의가 우리의 미래와 행복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나눔과 순환과 공동체의 가치가 존중되는 새로운 변화를 위해 실천하도록 돕는 끈기와 인내 그리고 새로운 모델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창조 정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