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의 청원 감성 동행

길위의 재봉이 47 청북교회 안재명 원로 장로

송재봉 2023. 12. 14. 12:02

양관이 청주 근대 문화 형성에 끼친 영향이 정말 커요.

그런데 일반시민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 송재봉 :  안녕하세요. 오늘 시간을 내주셧 감사드립니다. 제가 정치를 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장로님의 다양한 고견을 듣고 싶고요. 그동안 일신여고 안에 있는 '양관'의 유네스코 등재 활동을 해 오셨는데 그  이야기부터 말씀해 주세요.

 안동현 선생(안재명 장로 자제) : 양관은 탑동에 있는 일신여고와 주변에 있는 옛날 기독교 선교사님들이 쓰셨던 건물이죠. 양관(洋館)이라는 게 서양 양()자에다 집관(館)잖아요. 그러니까 이 건물이 100년 전 쯤에 선교사님이 지은 건데,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33호로 등재되어 있는 것을, 유네스코의 유형 문화재로 등재하려고 하는 시도하고 있어요.

핵심이 뭐냐 하면 민노아 선교사(프레드릭 S. 밀러, Frederick S. Miller)는 초창기 선교부에서 충청도 지역의 선교활도을 하던 분인데, 그 분의 지역에서의 활동이 단순히 기독교계에만 영향을 끼친 게 아니라 우리 청주의 지역사회와 근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공감대를 키워 나가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양관을 문화 중심의 어떤 테마와 스토리를 만들고, 공간과 공원 만들기어 가는 것이 과제인데요. 현재 일신여고 안에는 청주시에서 후원을 해 조그만 문화공간을 만들어 놓았어요. 아버님 그 얘기부터 먼저 해주시죠

 안재명 장로 : 글쎄 제 얘기가 도움이 될까요?

 

▪ 송재봉 : 그럼요. 청주의 역사를 알아야 앞으로 어떻게 만들어갈지 방향을 세우는 거니까요.

 안재명 장로 : 청주대학교의 김경식 교수님이 양관이 근대 문화의 하나의 상징적인 종교 문화유산 아니냐 생각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찍었어요. 그분이 찍은언덕 위에 붉은 집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유트브를 통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 양관이 어떻게 지어졌고, 청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여러 사람들의 대담형식으로 조리 있게 설명해 놓았어요.,
청주 근대 문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 양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 같고, 기독교 입장에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일반적인 시민들은 양관을 잘 몰라요. 건물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분들도 많아요.

양관은 청주 근대 문화 형성에 끼친 영향이 정말 커요. 양관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육거리에 있는 제일교회 건물을 지었고요. 제일교회는 양관을 이용해서 세광 중고등학교를 여기서 개교했어요.

교육적인 면에서도 영향이 주었을 뿐 아니라, 해방되고 양관 건물에서 청주 KBS가 개국을 했어요. KBS 개국 몇 주년 할 때 마다 초창기 양관 사진을 내걸고 보여주어 방송 쪽에도 영향을 끼쳤고, 청주 역사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소민병원이라고 소-민-병-원(강조), 그 병원이 양관 건물에 일찍 세워져 있었는데 해방 이후에 운영이 중지됐죠.
그러니까 양관은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의료적으로 볼 때 청주에 상당히 영향을 끼친 근대문화유산들인데 청주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이 내용을 알려야 되겠다 하는 뜻이 청주 근대문화와 초창기 기독교 역사에 관심 있는 몇 분들이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김경식 교수가 양관 다큐멘터리를 찍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하고 있고요. 근래에는 상당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청주에 처음으로 기독교 씨앗을 뿌린 민노아 선교사 선교 정신을 계승하고 되새겨보자 하는 운동을 해보자는 목적으로 위원회를 조직을 했어요.  2~3년 됐어요. 그래서 상당교회 장로님들 중심으로 민노아 선교사의 그 뜻을 기리는 사업을 지금 전개를 하고 있어요. 한달 전인가 민노아(뮐러) 목사에 대한 선교와 문학에 대한 발표회도 상당교회에서 한 번 했어요.


▪ 송재봉 : 민노아 선교사란 분이 시도 쓰고 수필도 쓰고 그러셨나 봐요?

 안재명 장로 : 민노아(뮐러) 목사는 문학을 전공하신 분이라 많은 글들을 생전에 썼는데, 청주 시민들에게 알릴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을 모아 최근 상당교회 위원회에서 시와 글을 입수해, 상당교회 이원식 장로(충북대학교 교수)가 번역을 하여 출판하려고 진행중에 있어요.

 

▪ 송재봉 : 저도 양관은 자주 가봤는데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얘기가 많습니다.  저도 지역의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있어서 청주 문화여행을 하면 꼭 양관에 들려서 앞으로 잘 보존해야 한다고 얘기는 많이 했는데, 양관이 어떤 역사적 과정과 가치,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 까지는 정확하게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말씀 듣고 보니까 그 가치가 훨씬 더 새롭게 느껴집니다. 양관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록을 추진하신다고 하셨잖아요. 양관 하나만으로는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등재운동을 규모 있게 하려고 구상을 하고 계신 건가요?

 안재명 장로 : 저는 거기 깊이 관여를 지금 안 하고 듣고만 있는데, 그 위원회를 폭넓게 조직을 해서 위원장도 새로 선출하고 위원들도 더 뽑아 추진 중에 있다고 그래요. 아마 그분들 활동 여하에 따라 청주시에 유네스코에 등재할 만한 문화유산도 있다 하는 것도 홍보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청주의 양관만 따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전국의 기독교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선별해서 함께 지정신청을 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 송재봉 : 지금 그 양관이 소유권이 어떻게 돼 있나요? 지금 있는 학교로 돼 있나요?
 안재명 장로 : 충북, 충청노회라고 하는 교회유지 재단에 속해 있어요.

 

▪ 송재봉 : 양관이 학교 내에 있다 보니까 학교 입장에서는 쉽게 개방하기도 어렵고 활용하려는 것도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안재명 장로 : 학교 구내에 있어서 시민들이 접근하기 좀 어렵죠.

 

▪ 송재봉 : 학교안에 건물이 있다 보니 시민들께 덜 알려졌는데 좀 더 개방을 하면 많은 분들이 양관의 의미나 가치에 관심을 갖을 것 같아요.

 안동현 선생 : 유홍준 교수님의 말씀 중에 '폐쇄되어 있어서 사용하지 않는 유물은 가치가 없다.'라는게 있어요
오래 되었어도 사람이 살고 있는게 핵심인데 대표적으로 경주 양동마을이 그렇잖아요.

오래 됐으면서도 사람이 살고 있는게 핵심인데 일신여고에 있는 양관은 한동안 여학생들은 거기서 생활관을 사용했고, 하나는 선교 목회관으로 쓰고, 또 하나는 성서 신학원으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역사가 오래 유지된 것도 따지고 보면 계속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그냥 오래된 고가로 다 남아 있는 게 아니라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큰 가치가 있다. 앞으로는 옛날 것 개보수 한다는 개념보다는 그 문화를 다시 창조하는 의미에서 진행하면 훨씬 더 옛 것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추진하는 게 상당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송재봉 : 사실 청주에 남아 있는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

 안재명 장로 : 여러 개의 양관 중에 가장 오래된 그 양관 건물이 포스사이트 기념관이에요. 옛날 생활관으로 쓰던 옆 건물인데 현재 충북 기독교 역사관이라고 현판을 걸고, 기독교 역사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일반 방문자들을 위해서 오픈을 하고 있어요.

자료를 구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후원금도 각 교회에다 부탁을 했는데, 주로 상당교회가 돈을 많이 후원 했어요. 내부 집기라든지 전시물을 잘 갖췄고 앞으로 부족한 것을 더 보완하려고 교장 선생님이 꽤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양관은 청주 근대 문화 형성에 끼친 영향이 정말 커요.

양관에서 세광 중고등학교를 개교했어요. 청주 KBS도개국을 했고

청주 역사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소민병원도 양관건물에 있었죠

더 나아가  YMCA, YWCA도 양관에서 시작했어요. 

▪ 송재봉 : 그동안 꾸준히 문화유산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회 자체적으로 노력을 많이 해오셨네요. 상당교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장로님은 내덕동에 있는 청북교회 다니시잖아요?

 안재명 장로 : 청북교회가 1956년에 설립이 됐는데 그동안 교회가 많이 성장했죠.

 

▪송재봉 : 예전에 저희가 대학 다닐 시절에는 가끔 시국기도회를 청북교회에서 열어, 저도 가끔 청북교회에 간 기억이 남아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지역에 정말 몇 안되는 깨어 있는 교회라는 생각에 애정이 많고요. 청북교회 출신들이 지역에서 좋은 활동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이게 다 목사과 장로님의 힘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민주화운동 초기에 교회가 그런 역할을 참 많이 했잖아요. 약간 좀 곁다리긴 하지만 제일교회 옆에 있던 망선루도 굉장히 중요한 문화유산이었잖아요.

 안재웅 이사장 : 망선루도 사실 일제에 의해서 완전히 없어질 뻔했던 걸 제일교회에서 목사님과 신도들이 뜻을 모아 교회 안으로 옮겨 건축을 새로 하고, 그냥 둔 게 아니라 거기서 세광중고등학교가 거기서 출발한 거죠. 또 YMCA도 처음에 망선루에서 자리를 잡고 시작을 했고 YWCA도 아마 거기서 처음 출발했을 거여요. 그래서 정말 교회가 우리 사회 초창기에 자리를 잡아가는데 역할을 많이 해왔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걸 잘 몰라요.

 안재명 장로 : 초창기 민주화 운동은 기독청년협의회(EYC)라고 제일교회 중심으로 활동했고, 청주지역 민주화의 성지라 할 수 있죠

 

▪ 송재봉 : 저도 86년도에 대학을 입학을 했거든요. 그때 제일교회에 참 많이 갔어요. 교회가 독재의 방패막이 역할을 해주었는데, 옛날로 치면 성역, 소도(蘇塗) 같은 역할을 해준 거잖아요. 그래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가면 아무래도 보호를 받고요. 집회 장소를 허락해 주기도 했고요.

 안동현 선생 : YTN 변상욱 대기자가 청주고 출신이고, 청주 제일교회 출신이에요. 교회에서 사회를 민주화시킨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느데, 대표적인 분이 옆에 앉아 계신 안재웅 이사장님, 어마어마한 민주화의 역사를 온 몸으로 겪어오신 분이지요.

▪ 송재봉 : 바쁜신데도 불구하고, 제가 몰랐던 세밀한 내용들을 잘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