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봉의 청원 감성 동행

길위의 재봉이 41 - 반영억 내덕동 주교좌성당 신부

송재봉 2023. 11. 8. 19:27

오송참사, 마땅히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어요

**  인터뷰 : 반영억 신부님(내덕동 주교좌 성당 주임신부)

▪ 송재봉 : 신부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기도 하고 세상의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할 정치도 언론도 제 기능을 하는 데가 없는 것 같아서 위로받는 얘기를 어디선가 좀 듣고 싶은 거예요. 신부님은 많은 분들에게 말끔과 글로 좋은 기운을 주시니까 뵙고 저도 혼탁해진 영혼이 위로를 받고 싶습니다. 제대로 하라는 혼도 좀 나고요(하하)

반영억 신부님 : 모두가 혼나야 돼요.ㅎㅎ

 

▪ 송재봉 : 신부님께서도 요즘 세상의 많은 일들을 보고 계실테니까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반영억 신부님 : 법정 스님께서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면서 법정 스님의 말씀을 인용하곤 했는데 사실 우리 마음에 담은 말들이 결국엔 바깥으로 이렇게 쏟아져 나오잖아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요즘에는 감정의 절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냥 단순하게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절제하지 않고 쏟아내니까 그런 부분들이 상처가 되고 또 아픔이 더 가중되니까 제일 안타깝죠!

   저는 여기 성당에 온 지 1년 됐는데 매일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한 다음에 얘기를 시작해요. 처음에는 저 양반이 며칠이나 할까 이런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런데 1년 내내 하고 요즘에는 옆 사람하고 인사할 때도 자연스럽게 사랑합니다라고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조금씩 좋은 기운이 옆 사람에게 퍼져나가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내가 잃어버렸던 사랑이 회복되고 우리의 소명도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돼요. 회복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섬기는 정치인이 되어 주세요. 사용하려고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려는 정치인이 돼야지요.

 

▪ 송재봉 : 사람들 만나면 정치인에 대한 인상을 싸우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직설적이고 사이다 같은 발언들이 정치인의 모델처럼 생각합니다. 독설을 잘 못하는 사람은 정치 안에서도 실패자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저는 그게 잘 안되거든요. 그게 맞는 것 같지도 않고요 신부님 말씀처럼 말보다 어떤 태도로 정치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반영억 신부님 : 초심을 잃지 않으면 되는 것인데 자꾸 초심을 잃어서 문제죠청와대에서도 일해 보셨고 정치하신다고 나섰을 때 본인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이 있잖아요. 그 가치관들을 계속 잘 유지하면서 풍요롭게 키워가야 되는데 자꾸 눈치 보느냐고 소신이 없어지거나 주관이 훼손되면 안 되잖아요.

기성 정치인들에게 물들거나 휩쓸리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일관되게 초심을 어필하고 색깔을 낼 수 있는 소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죠. 정치인은 소신보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되고 얼굴에 철판 깔아야 한다는 얘기를 농담처럼 퍼트리니 이제는 현실이 돼버렸어요. 그런 농담들이 실제로 현실이 되어 버린 게 제일 가슴 아픈 거죠.

회복된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고 섬기는 정치인이 되어 주세요. 

사용하려고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섬기려는 정치인이 돼야지요.

▪ 송재봉 : 그런 얘기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정치인은 어차피 약속은 안 지켜도 되니까 그냥 다 된다고 해라, 그리고 무조건 다 해준다 그래라는 식으로  해결책은 당선된 다음에 생각해라. 이런 식의 정치문화가 우리 사회가 만연해 있다 보니까 정치인에 대한 불신감도 그만큼 더 커지는 것 같아요.

반영억 신부님 : 실질적으로 선거만 딱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싹 돌아서지, 현장에서 실제로 대중을 상대로 해서 이렇게 들어주고 애로를 경청하는 이런 것들은 없잖아요.

 

▪ 송재봉 : 맞아요. 정치인들이 행사장이나 현장에 오기는 하는데 와서 인사말만 하고, 실제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가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그것도 정말 문제인 것 같아요.

반영억 신부님 : 이번 오송 참사의 경우도 마땅히 위로를 받아야 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어요. 그동안 정치인들 많이 만나서 만날 때마다 ‘섬기는 정치인이 되어 달라’ 이 말씀을 드리는데 제대로 국민을 섬기는 정치인을 만나는 것은 어렵더라구요.  섬기는 것이 뭐 크고 거창한 일이 아니거든요. 사람들 이야기 잘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정말 나는 혼자가 아니다, 이웃이 있고 주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고 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지지해 주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주는 거잖아요.

 

▪ 송재봉 : 신부님 말씀 늘 명심하겠습니다.

반영억 신부님 : 저는 정치를 잘 모르는데 많은 분들이 일단 터뜨려 놓잖아요. 화면발, 조명발 받기 위해서 엉뚱한 소리라도 해서 그냥 그 이름이라도 올리고 보자라는 식인데 그게 얼마나 가냐고요.

 

▪ 송재봉 : 그게 우리 사회의 불신이라는 벽을 자꾸 높이는 역기능의 정치를 하는 거죠.

반영억 신부님 : 자기 알리려고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인데 아주 안 좋은 방법을 쓰는 거잖아요.

 

▪ 송재봉 : 사람이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요. 그러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되는데 사과를 안 하는 것도 문제이고 또 사과를 해도 용서하지 않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문제인 것 같거든요.

반영억 신부님 : 그렇죠. 미안할 때는 미안하다고 그래야 되는데 미안하다고 안 그러잖아요. 미안하다고 했을 때 자기의 그 권위가 훼손되는 것 같아서 안 하는데 사실은 미안할 때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이 정직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야 더 가치가 올라가는 것인데 그거를 자꾸 잃어버리니까 문제죠. 그래서 정말 안타까워요. 잘못했을 때 잘못했다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해요용기라기보다는 당연한 거죠.

 

▪ 송재봉 : 그러게 말이에요.

반영억 신부님 :  최근 오송 참사도 그렇지만 지난번 이태원 같은 경우도 그렇고 정치적으로는 정말 국민을 지켜드려야 됐었는데 부족해서 죄송하다, 안타깝다, 이 얘기는 기본적으로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전체적인 책임자로서도 그렇고 행안부 장관도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해 탄핵이 되었는데 결국엔 법적으로는 다 풀어져 버렸어요 탄핵이 기각되었을 때 저는 이런 기대를 했어요. 법적으로는 이렇게 해서 책임은 없습니다마는 이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온 부분에 있어서는 안타까워서 제가 그만두겠습니다. 이렇게 딱 나와야지요. 그런데 그 타이밍을 또 놓쳤어요.

  그런 부분들을 도의적으로 윤리적으로 책임의식을 가지고 표현해 줄 때 그래도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이 있구나, 지지와 위로를 받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받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얻고 그러는 건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표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피해자들도 마음의 상처만 커져 가니까 이제 뭐가 생겨요? 화만 생기잖아요 화가 생기니까 그 화는 또 어떤 면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표출이 될 수 있어요. 화가 자꾸 쌓이니까. 그런 상황들이 너무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 송재봉 : 요즘 우리사회는 많은 사회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고 계속 장기화 되어 갈등 지수를 곳곳에서 높이는 원인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좀 좋아질까요?

반영억 신부님 : 희망을 읽으셔야지요. 희망을 만들어내셔야 돼요. 파장은 자꾸 퍼지는 거잖아요. 선한 영향력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한 사람이라도 가지고, 이건 시간이 되면 채워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자꾸 줘서 퍼져 나가게끔 해야 돼요.

부정적인 얘기하면 사람이 자꾸 그런 쪽으로 가잖아요. 그러면서 짜증, 화들이 자꾸 쌓이고 그렇잖아요. 용수철을 누르듯이 꾹 눌러놓으면 그러다가 어느 날 팍 터지는 거잖아요.

저 사람 별것도 아닌 거 갖고 저래?근데 사실 별것도 아닌 게 아니죠. 그만큼 눌러놨으니까 이게 퍽퍽 올라오는 건데 누가 완충 역할을 해줘야 되는데 그 부분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시민사회운동하고 했던 게 그런 거잖아요.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런 기본 가치관을 가지고 실현해야 되겠다고 꾸준히 해 오시는 그 방향이잖아요. 그래서 정치인이 되어도 그 장점을 잘 살리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 송재봉 : 요즘들어 왜 정치를 시작했냐!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선한 의지들을 모아서 정치활동도 자원봉사와 자발성에 기초해서 새롭게 만들어가야 되는데 시간도 걸리고 금방 세력이 막 커지지도 않는 답답함하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의 모습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고요. 

반영억 신부님 : 그렇죠. 어쩌면 어려움도 있고 힘문제를 풀어내는게 정치잖아요. 여야 함께 서로 딜도 하고 타협해서 나가는 부분들도 있어야 하는데 요즘 정치에는 그런 면이 실종됐어요. 말하자면 여야 대표라든지 국회의장 이런 양반들은 뒤로 물러서 있어야 되잖아요. 밑에 대변인이 막 욕을 하든 뭐 하든 싸우는 건 그 밑에서 싸우고 대표들은 뒤에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딱 봐갖고 막판에 서로 타협할 수 있는 이런 여지를 만들어줘야 되는데 요즘에는 그런 여지가 없단 말예요.

먼저 나서서 한 방씩 하니까 이건 뭐 끝까지 간 거잖아요. 그럼 누가 거기서 중재를 해요? 필요할 때 힘 있게 조언을 얻고 상의를 하는 법정 스님이라든지 성철 스님 개신교 함석헌이라든지 우리 천주교에는 김수환 추기경님 이후로는 효과적 어른이 없으신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협상이 이루어지는 부분이 없는 것 같아요.

 

▪ 송재봉 : 그러네요. 뭔가 옛날에는 마지노선이라고 하는 마지막 넘지 않는 선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반영억 신부님 : 정치로 풀어야 될 것이 많은데 그런 것이 없어진 게 저는 안타까워요. 저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그냥 평소 바라보는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 송재봉 : 말씀 들으면서 말의 힘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새롭게 배웠습니다. 선한 위지로 꺽이지 않는 마음으로 정치가 약하고 아픈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실수를 했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법의 잣대가 아닌 상식의 잣대를 가지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에 큰 위로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두서없는 질문에도 보석같은 말씀으로 저의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섬기는 정치, 책임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씀 잘 새기겠습니다. 

필요할 때 힘 있게 조언을 얻고 상의드릴 수 있는

법정  성철 스님, 개신교의 함석헌,  천주교에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어른이 없으신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