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가들은 행정의 의미를 행정의 주체에서 찾지 않고 ‘사회의 공공가치를 실현’이라는 목적에서 찾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행정을 경영과 관리적 측면에서 인식함으로써 나타나는 공직사회의 수단중심적 행태의 일반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즉 행정의 개념을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하고 관리해서 국민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이라는 관리적 측면에서 이해한 것은 행정을 행정가가 중심이 되는 관리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는 과료주의의 고착화로 행정과 행정의 파트너인 주민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행정의 주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지도 중요하다. 행정의 주체를 정부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정부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시장으로 확장해서 보는가는 행정을 하는 태도와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현대 사회는 행정의 주체가 정부에서 시민사회, 시장으로 확대되어가고 있지만 행정관료들 사이에서는 이를 일반적인 경향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은 행정가들의 고유 영역이라는 고착화된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인 상황이다.
재원을 확보하고 자원을 관리하고 배분하는 측면에서도 행정은 경직성이 강하다. 일반 시민사회(civil society)나 시장(market)의 경우 현장 대응형 신속한 결정과 유연성이 보장되지만 행정의 경우는 대부분의 정책결정과 집행, 인력과 재원의 확보 등에서 법과 정치권, 시민사회의 규제와 통제를 받으며 법과 규칙을 벗어난 새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의 범위가 협소하다. 즉 법에 의해 엄격한 제도적 통제를 받는 것과 함께 정당, 시민단체, 언론, 여론 등에 의해 일상적인 형향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법과 규칙에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상의 행정을 둘러싼 환경적 요인과 행정내부적인 엄격히 위계적인 관료제의 정착은 행정가들에게 행정을 관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게 하고, 개방적이고 열린 행정에 임하기보다는 행정의 주체를 공공 행정조직 내부의 문제로 인식하게 하며, ‘사회의 공공가치 실현’이라는 행정의 의의를 망각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시민이 행정을 생각하면 검정색을 떠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검정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당당함, 엄숙함, 무게감,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마음을 억제하며, 원초적, 폐쇄성, 답답함 등 다양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가 행정에 투영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행정의 역사는 권위주의 정권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권위와 통제의 상징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서비스 행정, 거버넌스의 개념은 확립되지 않았다. 이는 행정을 생각하면 친근함 보다 권위주의를 먼저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행정은 주민의 참여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가들이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행정의 정보도 주민의 것이 아닌 행정가와 정부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폐쇄성을 보여 왔다. 이는 행정이 국민을 속이고 정보를 독점하는 기관으로 인식하게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행정은 법과 규칙이 지배하는 영역이며 법은 기본적으로 엄격하고 엄숙하게 생각한다. 많은 시민이 행정기관을 방문하여 접하는 단어는 법과 규칙이다. 시민이 원하는 행정을 못하는 이유도 법과 규칙이고, 이러한 법과 규칙을 적용하는 행정가는 너무도 형식적이다. 인간적인 격려와 위로를 행정에서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다.
행정하면 검은색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행정자체의 고유한 속성으로부터 기인 한 측면과 한국적인 권위주의 정권에 봉사하는 관료중심주의에 낳은 결과물이 혼재된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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