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과 자치/자치행정

시민참여 제도 정착의 가능성과 한계

송재봉 2010. 7. 23. 11:51
원주 투데이 기사에서 복사
   
  ▲ 청주시 시민참여기본조례 이행점검 결과 자료집과 시민예산학교 자료집. 실질적인 주민참여를 위해서는 조례 등 시민참여를 위한 제도를 입법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주시는 지난 10월 1일 조례 제911호로 '원주시 주민참여 등에 관한 기본조례'를 공포했다. 용정순 의원이 발의해 제정된 이 조례에는 예산편성의 주민참여를 포함해 각종 행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열어 놓았다.

자치단체가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각종 위원회에 공모나 추천을 통해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장애인·노인·여성 등 각계각층의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에 참가하는 공무원의 수가 3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해 '관주도의 의사결정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 회의자료와 회의결과도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주민의 복리·안전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에 대해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청회 또는 설명회를 개최하도록 했으며 선거권이 있는 주민 200명이 요구하면 시는 공청회나 토론회를 개최하고 결과를 시정에 반영할 것인지의 여부를 통지해야 한다. 이밖에도 조례는 주민 선호·기피시설 설치 또는 유치를 위해서 주민의견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집행기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한 조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조례와 마찬가지로 이 조례 역시 조례에서 담고 있는 내용을 실질적으로 구현하려면 상당한 노력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민·관협력을 통해 '청주시민참여 기본조례' 제정에 기여한 송재봉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주민참여 조례를 제정하더라도 자치단체장의 의지와 참여하는 주체인 주민의 준비가 없으면 조례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참여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시정의 주민참여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돼 왔고 이를 제도화한 것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이다. 대표적인 게 주민참여기본조례와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이다. 주민참여 감독대상 공사 범위 등에 관한 조례와 주민참여감사제 규칙을 운영하는 자치단체도 있다.

전국의 76개 기초자치단체가 주민(시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광역자치단체 중에서는 경상남도가 주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도내에서는 속초, 홍천, 평창, 정선, 철원, 인제, 양양이 주민참여 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했고, 원주는 주민 참여 등에 관한 기본 조례 안에 주민참여예산제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전국에 주민(시민) 참여 기본 조례를 운영하는 기초자치단체는 원주를 포함해 청주, 익산, 순천, 거창, 영광, 함평, 양평, 연천, 안산, 대전 대덕구, 광주 북구, 부산 북구이며, 광역자치단체는 제주특별자치도, 대전광역시이다.

이중 원주와 같이 주민참여 기본 조례에 참여예산제를 포함한 기초·광역자치단체는 연천, 안산, 대전 광역시이며, 주민참여 기본 조례만 제정하고 참여예산제를 운영하지 않는 곳은 거창, 부산북구, 제주특별자치도이다. 나머지 청주, 익산, 순천, 영광, 함평, 양평, 대전 대덕구, 광주 북구는 참여예산제와 주민참여 기본조례를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주민참여예산제를 포함해 시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각종 제도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조례를 근거로 주민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자치단체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제도인 셈이다.

   
 
  ▲ 원주시는 지난 10월 '주민참여 등에 관한 기본조례'를 공포했다. 각종 행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사진은 원주시의회 사무국 직원들이 투표함을 개봉하는 모습.  
 

 
"조례제정보다 운영이 중요"

청주시는 주민참여예산제를 포함한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를 제정해 2004년 9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후 주민참여기본조례에서 참여예산제를 분리, 시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를 제정해 2008년 2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청주시에서는 2002년부터 주민참여 제도화를 위한 시민참여기본조례 제정운동이 시작됐다. 청주시장 후보 대상 공약채택요구 등의 과정을 거쳐 NGO·주민자치위원·청주시·청주시의회 등이 참여하는 조례제정추진위원회를 구성,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통해 조례를 제정하게 됐다. 민·관이 함께 한 협력모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조례가 취지에 맞게 실질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연철흠 청주시의회 부의장은 "조례에서 담고 있는 시장의 책무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실천하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며 "의회에서도 조례가 잘 운영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비판·자료요구 등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송재봉 사무처장은 "청주시예산참여시민위원회 위원이 시의 코드에 맞는 사람들로 채워지고 결정기구가 아닌 자문기구로 전락했다"며 "조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조례에 담고 있는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운영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주시 주민참여기본조례 담당자인 이정미 씨는 "시민정책토론회를 한다해도 다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며 주민참여의 제한성을 시사했다.
 
"조례의 자의적 해석과 운영 방지해야"

청주시민참여기본조례에는 각종 위원회의 회의공개, 시정정책토론청구, 시민의견조사 등의 내용이 담고 있다. 시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에는 시민참여예산제 운영조례 운영계획 수립 및 공고, 청주시예산참여시민위원회 운영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따라 청주시에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주민참여제도를 홍보하는 한편, 각종 위원회 회의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청주시민참여 기본조례 이행사항을 점검하고 이를 책자로 발간해 의회 등에 보고하고 있으며, 예산참여시민위원회 위원 등을 대상으로 한 시민예산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다른 자치단체에 비해 상당히 선진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청주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청주에서 제도가 시행된 이후 주민 청구에 의한 시정정책토론이 이뤄진 것은 단 한번이다. 올해 실시된 '차선 다이어트를 통한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을 주제로 한 토론회였다.

연철흠 부의장은 "토론회를 청구하더라도 시에서 받지 않으면 도리가 없다"며 제도의 맹점을 지적했다. 청주시는 조례시행규칙을 통해 시정조정위원회에서 토론청구 요건을 심사하고 결정하도록 했다. 많은 주민이 서명을 해 토론회를 청구해도 시가 이를 받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학교급식 관련 토론 청구는 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 부의장은 "시민의견조사도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며 "충북대 병원 입구 고가도로 건설에 대해 주민들은 집회까지 하며 반대했는데 시에서는 여론조사에서 찬성하는 주민이 많다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예산참여시민위원회 운영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상호 청주시 예산2담당은 "동 추천자 30명, 시민공모자 12명, 비영리민간단체 추천자 6명 등 각계각층의 주민으로 구성해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른말(?) 하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송재봉 처장은 "비영리민간단체로부터 추천을 받을 때 제한적으로 추천을 했고 이와 같은 사실을 사후에 알았다"며 "문제제기 후 위원회에 들어오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동 추천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의사결정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기대할 수 없다"며 "동 단위 사업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면 굳이 위원회가 없어도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위원회가 오히려 예산편성에 있어서 시민단체 개입여지를 좁혔다"고 덧붙였다.
 
"제도의 보완과 대안역량 키워야"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는 주민참여기본조례와 시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를 개정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시정조정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정책토론회 토론청구 요건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지역사회 내 갈등을 관리·조정하는 시민배심원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에 주민참여와 같이 사전적으로 시정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보강할 계획이며 예산참여시민위원회 의사결정구조를 바로잡는 작업도 검토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민참여를 실질적으로 일궈내려면 지역사회의 의제를 생산해 사업계획을 세울 수 있는 대안역량의 강화와 사업예산편성 역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송재봉 처장은 "조례의 취지와 효과를 반감하는 독소조항을 없애고 시가 자의적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등의 제도보완과 함께 지역사회의 의제와 사업계획을 발굴해 공론화하고 이를 시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다"며 "제도가 있어도 주체의 준비가 없으면 이를 운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참여를 위해서는 전문성 강화가 전제조건이 돼야 한다"며 "전문성을 바탕으로 의제와 사업을 발굴해 이를 공론화하고 필요한 예산을 산출해 행정기관과 협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다양한 형태로 제도화된 주민참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기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김선기 기자skkim@wonju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