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이야기

조희연의 시민운동 혁신을 위한 토의-심층취재형 시민운동 필요

송재봉 2010. 6. 16. 00:44



대중주체성 안고 가야할 ‘심층취재형시민운동’이다
조희연의 시민운동의 혁신를 위한 토의(1)

조희연

“지금 시대 고통스럽지만 한단계 업그레이드 운동 고민…
전문적 역량을 갖는 ‘심층취재형 시민운동’으로 거듭나야”

‘집단 협업지성’과 결합 ‘직접 민주주의적 시민운동’ 개발할 때

시민운동 활동양식이 민중운동 차이와 경계지점 없어 아쉬움
‘전문적’ 시민운동은 ‘주특기’ 역량 상실하면 영향력 현저히 약화
대중 주체성 받아 안을 시민사회단체 통로와 양식도 변화해야

‘1단계 시민운동’- 우호적 정치 사회적 환경에서 민생의제들을 정책의제로 쉽게 전환
‘2단계 시민운동’- 제도정당과 보수언론이 시민운동 ‘정치성’을 ‘친야당적’으로 규정 억압
권력감시운동은 국민 시민 민중의 주체적 힘을 강화하는 운동이므로 영원히 지속되어야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시민사회운동의 환경이 크게 변화하였다. MB정부의 1/2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많은 고민들이 든다. 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에 관계하면서 필자는 ‘시민운동’이 시민운동 그 자체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고, 민중운동과 연대하면서 활동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발언했다.

시민운동 위기의 징후

그러나 최근 정반대로 “시민운동이 그 활동양식에 있어 민중운동의 차이와 경계지점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것을 필자는 ‘시민운동의 위기의 징후’라고 말하기도 한다. 더 많이 ‘거리의 투쟁’을 해야 하는 시민사회운동의 조건 때문임을 잘 안다. MB정부의 출현 이후 정치적 공간의 축소에 따라, ‘점잔빼고 말 것도’ 없이 몸으로 싸워야 하는 영역이 대폭 확대되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잘 안다.

시민사회신문DB
'포스트MB'시대를 대비하는 시민운동 역량강화를 위한 새 방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사회가 유권자 힘을 보여주자는기자회견을 갖고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어려운 때일수록, 자신의 ‘주특기’를 강화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을 유지하면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20년 동안 민중운동과 달리 시민운동은 제도적 수단과 전문적 내용을 기초로 하여 국민적 여론을 조성하여 권력과 자본을 압박하는 식으로 활동하여 왔다. 국민들의 눈에도, 시민운동은 ‘몸으로 떼우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것’을 기초로 하여, 그리고 국민적 여론과 합리성을 기초로 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면서 활동하는 운동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이에 대해 민중운동 진영에서는  ‘뺀질뺀질하다’라는 식의 일부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운동들은 차이를 갖고 있고, 각 운동들이 그러한 차이를 살리면서 운동해주어야, 전체로서의 운동진영은 풍부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시민운동의 차이성이 역설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함과 동시에, 시민운동이 일종의 ‘심층 취재형 운동’으로 심화를 함으로써 새롭게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을 보다 심도 있게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변화는 ‘1단계 시민운동’을 뛰어넘는 ‘2단계 시민운동’ 지평으로의 이행이라는 큰 변화의 일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MB정부 하에서의 고통이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시민운동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 진통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비우호적 환경에 처한 시민운동

지난 10-20년 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의 ‘자유민주주의’적 개혁을 위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90년대 1단계 시민운동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정치적?사회적 환경 속에서 전개될 수 있었다. 즉 정부, 언론, 대중들의 우호적 시선과 ‘무조건적인’ 지원에 힘입어 다양한 민생의제들을 정책의제로 쉽게 전환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단계 시민운동’은 아래의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MB정부 하에서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조건에 처해 있다. 제도정당, 특히 보수정당은 시민운동의 ‘정치성’을 ‘친(親)야당적’인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억압하려 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하면서 그것의 메시지를 국민적인 것으로 전달하던 언론들, 특별히 보수언론들이 이제는 이를 ‘정파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의도적으로 배제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시민운동의 메시지를 국민적인 것으로 수용하던 국민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태도도 복합적으로 변화해 있다. 예컨대 촛불시위에서 보는 것처럼, 시민운동의 운동형식을 넘는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주체화되면서 때로는 보다 적극적인 직접행동도 조직하고, 보다 적극적인 정치적 운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반대로 더욱 불안정화되는 삶에 대해서 불안하면서도 침묵하거나 신자유주의적 규율효과에 압도되어 스스로 경쟁력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대중들도 많다. 이것은 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 시민운동의 국민적 역할을 가능하게 했던 특정한 대중, 언론, 제도정당들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시민운동의 영향력의 급속한 확대국면이 도전국면으로 전환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비(非)우호적 환경(사회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정치적 기회구조’의 축소) 속에서 한국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주체적 조건을 아래로부터 축적해가야 한다. 비우호적인 환경에서도 어렵지만 국민적 공감을 확보해내면서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는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적 감시역량 강화 중요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에서 몇가지 점만을 부각시켜 본다면, 먼저 2단계 시민운동에 부응하는 전문적인 권력감시역량, 그를 뒷받침하는 정책역량을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가 한가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성운동이건, 환경운동이건, 종합적 시민운동이건, 시민운동은 모두 일정하게 권력감시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시민운동이 각각의 영역에서 전문적인 운동역량을 강화해서, ‘운동환경의 열악화’, 보수와의 적대적 관계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대중운동과 달리 전문적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시민운동은 스스로의 ‘주특기(主特技)’적 역량을 상실하면, 현저히 그 영향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MB정부 하에서 시민운동이 과거와 같은 전문적 감시 보다는, ‘거리의 투쟁’을 더 많이 조직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런 상황일수록, 권력과 시장의 합리화에 대응하는 전문적 감시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기회구조’는 축소되고 나아가 정치사회적 환경이 열악화되는 것에 대응하여 ‘주체적인’ 운동역량은 빠르게 제고되지 않음으로써 갭이 커져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문제제기형’ 감시’운동에서 ‘심층취재형’ 감시운동으로 스스로를 심화시켜 가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력감시운동은 영원한 운동

필자가 시민운동의 1단계와 2단계를 구분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개념적 구분일 뿐, 권력감시운동의 본령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의미에서 ‘권력감시운동은 영원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국가권력(정치권력), 경제권력을 감시하고 인간화하기 위한 운동”은 언제나 필요하며 형태를 달리하지만 언제나 지속되어야 한다.

이 운동은 국가권력(정치권력), 경제권력에 대항하여 (시민)‘사회권력’과 민중권력을 강화하는 운동이고, 국민시민 민중의 주체적 힘을 강화하는 운동이므로 영원히 지속되어야 한다. 그 정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정부가 수립되어도 권력감시운동은 계속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어도-국가사회주의의 붕괴를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권력감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권력은 언제나 자기절대화와 자기부패화의 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여기에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사회의 독립적인 운동의 ‘존재론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단지 권력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감시운동의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적 위기이자 도전적 위기

이제 낮은 수준의 ‘문제제기형 운동’의 ‘정치적 성격’을 보수언론과 보수적 사회집단들도 다 ‘안다’. 이제 그들은 시민단체가 친(親)민주당 운동 혹은 친진보정당운동이라고 치부해버린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가 한나라당이나 재벌을 지지하는 그 ‘정치적 성격’과 시민단체가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에 우호적인 ‘정치적 성격’을 갖는 것이 같은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시민운동이 여전히 전유하고 기반해야 하는 ‘국민적 개혁과 진보’의 공간이 존재한다. 이 공간이 존재하는가 않는가하는 것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낮은 수준의 시민운동 수준을 뛰어넘어, 더욱 높은 수준에서 자신의 감시역량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못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처럼 2단계 시민운동, 그 일부로서 심층취재형 시민운동을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새로운 아이디어와 인적 자원을 목적의식적으로 찾아야 한다. 필자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시민운동의 위기적 양상은 어떤 의미에서 ‘성공의 위기’라고 생각된다. 즉 1단계 시민운동의 의제들이-비록 불철저하고 왜곡되었지만-‘실현’됨으로써 나타나는 도전적 위기이다.

여성운동의 경우 ‘호주제 폐지’라고 하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제도개혁의제를 참여정부 하에서 실현했다. 이제 더욱 높은 수준의 운동의제를 국민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 비교해보면, 한국의 정부, 정당, 자본과 기업은 상대적으로 합리화되어 있다. 시민운동의 성과로 이러한 합리성이 강제된 것이다.

잠재적 참여층 확대는 그나마 다행

이제 2단계 시민운동의 국민적 영향력을 위한 새로운 의제설정과 새로운 정책프레임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영향은 국민국가 내의 정치적 각축의 성격도 변화시키고 있다.
 
또한 시민운동의 지식인들을 포함하는 전문가들과의 인적 네트워크도 새롭게 재설정해야 한다. 솔직히 경실련, 참여연대, 여성단체 등의 ‘1세대 참여지식인’들은-특히 교수들의 경우-이미 제도권에 폭넓게 진출했다. 제도권 내에서의 일로도 바쁜 경우가 많다.

이제 2단계 시민운동의 전문적 진행을 위한 새로운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 이슈, 동력을 찾아나서야 한다. 과거 보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있지 않는 한, ‘제 발로’ 때로는 상근활동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지식인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10-20년 간의 시민운동의 역사로 인하여, ‘잠재적인’ 참여층은 확대되어 있다. 외부의 새로운 잠재적인 역량들을 발굴하고 네트워크하고 내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지는 대목이다.

사실 상상해 보기로 말한다면,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들은-우리가 감시하는 권력과 기업의 변화를 감안한다면-부설 연구소 혹은 싱크탱크에 10명의 상근연구집단들이 활동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러한 헤드헌팅의 노력은, ‘자발적으로 찾아와서 일하는’ 후보자를 ‘뽑는’ 단계를 뛰어넘어, 잠재적인 운동가를 찾아나서야 하고, 잠재적인 운동가를 체계적으로 발굴하는 시스템을 갖추려는 노력으로도 나타나야 한다. 

대중의 지적역량 ‘접속’ 절실

또한 심층취재형 시민운동은 새로운 전문가의 영입의 문제로만 파악할 필요는 없다. 당연히 그것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러나 동시에 대중들의 ‘집단지성’ 혹은 ‘협업지성’들을 시민운동과 결합시키려는 새로운 노력으로도 구현될 수 있다. 그동안 시민운동단체들의 ‘지적 역량’은 주로 상근활동가와 참여하는 전문가들의 ‘지성’에 의존했다.

그러나 시민운동단체의 ‘외부’에 있는 대중들의 다양한 정보와 의견, 아이디어 등을 종합해서 시민운동단체의 ‘운동자원’으로 만들려는 고민도 필요하다. 대중의 지적 역량을 시민운동에 ‘접속’해내는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2단계 시민운동의 구현을 위한 노력은,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사업방식의 개발의 노력으로도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의 교훈은 다양하겠지만, 과거에 비해서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요구와 지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2000년 시민운동의 최대의 연합운동이었던 낙선운동을 지지했던 시민은 주로 ‘후원형 시민’이었다. 이제 ‘주체적 참여 시민’이 되고 싶어하고,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가 되고자 한다. 이런 요구를 끌어안는 사업 방식도 많이 개발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직접 민주주의적 시민운동’의 개발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직접민주’ 참여요구 고민해야

지난 10-20년 동안 어떤 의미에서는 ‘대의민주주의적’ 시민운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즉 시민운동단체의 간사가 일종의 ‘대의자’의 역할을, 그리고 시민단체가 일종의 ‘대의기관’의 역할을 하는 구도였다. 그런 점에서 보다 ‘직접민주주의적 참여요구’를 시민단체가 어떻게 받아 안을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대중의 변화함에 따라 대중의 주체성을 받아 안을 시민운동단체의 통로와 양식도 변화해야 함은 당연하다.

여기서 논의한 심층취재형 시민운동으로의 전환은 2단계 시민운동의 구현과 그 발전을 위한 여러 노력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혹자는 ‘너무 공자님 같은 말’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록 우리가 MB정부 하의 고통스런 조건 속에서 현안 대응에 바쁘지만, ‘포스트-MB’ 시대를 대비하는 시민운동의 역량강화를 위한 새로운 방안들에 대해서 폭넓은 논의를 진행해보자.

조희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