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을 하면서 가장 답답할 때가 진실과 사실을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을 때이다. 법과 규칙을 준수해야할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규칙을 어기고, 도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그것도 명백한 증거에 기초한 문제 지적에 대해 전혀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거짓을 말하고 있음에도 양측의 주장을 공방수준으로 처리하거나 오히려 힘 있고 권력 있는 쪽의 주장을 대변하는 듯 한 인상을 받을 때면 종종 절망하기도 한다. 얼마 전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폭로사건, 이명박 대통령의 BBK 설립 발언 동영상, 충주시의회 의원의 해외원정 성매매 의혹 사건 등 이들은 분명한 증거와 객관적인 정황상 부패와 부도덕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의의 잣대로 이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한 진실을 주장한다고 진실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가난한 서민들은 자신의 이익을 배반할 것이 너무도 분명한 정치세력을 지지하게 되는가? 이런 복잡한 물음에 대해 조금은 도식적인 것 같지만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이론이 있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레이코프는 자신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프레임이란 단어를 통해 이런 역설적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한번 프레임이 형성되면 대부분의 사회현상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의 상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어서 레이코프는 프레임 이론을 통해 사람(유권자)들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유권자들이 자기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치세력과 정책을 지지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의거해 지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부유층을 대변하는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저소득층 서민들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일부 고학력 전문직의 존재를 설명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물론 사실과 진실은 모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진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이 공론의 장으로 나와 보통 사람들의 여론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프레임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가치체계와 이념에 따라 정부와 정치, 그리고 기업권력을 바라보며 자신과 동일시 하고자 하는 집단에 대해 지지하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단체나 진보정당들이 늘 공익을 주장하고, 상위 1%가 아닌 대다수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시민들이 왜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치세력과 집단을 지지하고, 사실이 아닌 것을 진질이라 믿고 그들의 주장을 여과 없이 전파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진실과 정의를 주장하며 여러 가지 통계를 제시하고 잘 못된 정부 정책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는 시민사회가 지향하는 도덕, 공공성, 생태, 평화, 인권의 가치에 대한 시민의 지지를 확대하긴 어렵다. 문제는 세상을 보는 방식인 프레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사회 시스템은 수정불가능하며 불합리한 경쟁 구도를 현실로 수용하고, 그 속에서 혼자 살아남기에 몰두하는 한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차별, 민영화의 폐해, 권력의 공영방송 KBS, MBC 장악이 가져 올 민주주의의 위험성 등에 대해 아무리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하며 우려를 전달해도 교육과 언론에 의해 끊임없이 공급되는 반노동자 의식, 재벌 대기업 중심주의 성장 신화, 승자독식주의라는 가치와 신념을 유지하는 한 사람들은 이를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할 과제로 느끼지 않는다. 문제는 정부정책을 통해 빈부격차, 교육과 의료, 주거, 일자리 등 사회공공성의 가치가 반영되는 동반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새로운 프레임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배세력이 공급하고, 그들에 의해서 공세적으로 제기되는 이슈를 따라가며 반대만 해서는 우리사회의 진보세력, 시민사회 운동이 서민들에게 희망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진실을 폭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가치와 지향을 대중의 언어로 재구성하여 좀 더 희망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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