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연대와 성찰의 기회를 준 필리핀 연수

송재봉 2009. 6. 9. 09:48

다름보다 공통점이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다.

송재봉(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경험하는 것은 두려움과 설례임이 교차하는가 보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를 처음 조직할 당시에도 우리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사안별 연대에 익숙한 시민단체에서 상설적인 연대조직을 만든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논의를 필요로 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당시 결론은 느슨한 연대였다. 현안 중심의 이슈는 사안별 연대가 담당하고 충북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는 연대의 코디네이터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대회의가 주력해야 할 것은 단체간 활동정보의 공유와 소통의장이 되고, 활동가에 대한 교육과 훈련 사업에 주력함으로써 지역시민사회운동이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설정하였었다.

 창립 5년 충북연대회의를 어느 덧 느슨한 연대라는 애초의 목표를 넘어 지역시민사회단체의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연대체로 발전하고 있다. 느슨한 연대, 논의는 하되 실천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스스로 어기고 더 높은 수준의 연대체로 위상을 강화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일은 많으나 활동가들 간의 소통과 나눔, 동지적 애정을 확인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각 단체의 활동가들이 수없이 들어왔다 나가고를 반복하는 사이 활동가들의 관계는 일 중심의 기능적인 연대로 전락하고, 조직과 활동가들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찾기 어렵다는 고민, 지나치게 단체중심의 활동에 몰입하면서 지역에서 함께 일하는 단체에 대한 무관심 나아가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 간의 교류조차 단체의 대표활동가 중심, 연대사업 담당자 중심으로 축소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7박 8일이란 기간 동안 “침묵의 문화를 깨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운동,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거나 교육 되는 방법이 아닌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주민스스로 그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에서 지역과 세계의 문제를 인식하고 세상의 당당한 주인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운동을 꿈꾸며 민중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현장중심의 주민조직운동 방법론을 실천하고 있는 필리핀 CO(Community organizing)운동을 배운다”는 명목하에 17명의 선후배 활동가들과 함께 진행된 필리핀 연수는 매우 색다른 경험과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우선 17명의 각기 다른 조직에서 매우 개성 있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과연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연수를 진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지, 7박8일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서로 조화롭게 연수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한 우려도 일면 존재했었다.

그러면서도 시민운동을 하면서 지금까지 함께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중해서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친근한 관계, 편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함께 했었다. 또 조급한 성과주의에 익숙한 우리들이 삶과 운동 모든 영역에서 여유와 기다림의 미학을 얻을 수 있다면 하는 희망석인 기대도 하였다.

그리고 연수가 끝나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모든 면에서 만족스럽다는 혼자만의 자평을 해보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 결국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일 텐데,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조급하다고 서두른다고 될 수 없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형식과 제도라는 성과에만 집착하는 운동에서 느리지만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여유와 긴 호흡의 운동이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함께 일하는 지역사회운동가들의 연대와 교류의 장을 보다 많이 만들어야 우리 스스로 힘이 되고 험난한 고난의 시기를 함께 넘을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진정한 연대와 사람에 대한 신뢰는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과 함께.......

 필리핀 CO의 원리 중 활동가의 자세와 관련해서 정리된 내용을 보면 “주민운동가는 새처럼 수영하고, 물고기처럼 날아야 한다(COs should “Swim like a bird” and “ Fly like a fish”)는 격언이 있다. 이는 운동가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고정된 사고로 지역사회의 문제를 접근하기보다 주민의 시각에서 현장의 다양한 변화와 특성을 반영하는 운동 그리고 과거의 경험과 관행에 머물지 말고 부단한 창의와 창조정신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활동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유머와 센스를 강조하고 있다. 어딜가나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운동가는 환영받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17명의 지역사회활동가들과 함께하면서 우리는 늘 즐거웠고 창의적으로 연수를 즐겼다. 물론 강의시간을 빼고...... 그 속에서 한명 한명이 매우 유능한 주민조직운동가의 자질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연수가 끝나고 돌아올 시점에서 우린 서로가 매우 친근한 사이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0여년 넘게 지역운동을 함께한 동료들 이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작다는 사실을 느끼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먼 거리에 있었음도 확인하게 되었다. 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형성됨은 알 수 있었다. 직책을 벋어 던지니 사람과 인격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성과 형식주의가 활동가들의 관계형성을 가로막는 요인임을 확인하며, 시민과 함께하는 운동과 조직간의 연대를 만드는 기초는 일하는 사람간의 신뢰와 믿음의 크기 만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필리핀에서 아시아를 느끼고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기보다 나의 아주 가까운 우리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상대에 대한 배려와 아름다운 심성으로 충만한 우리 주변의 활동가들을 그래서 신자유주의 시대, 철저한 개인주의와 경쟁의 시대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지 않고 공동체의 가치, 나눔의 가치, 연대의 가치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순수하고 어리석은 활동가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든든함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