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과 자치/자치행정

참여와 견제없는 지방자치가 제왕적 단체장을 만든다.

송재봉 2010. 5. 4. 10:11


지방자치 20년 무엇이 변했나?
 

  1991년 의회의원선거, 1995년 단체장 선거로 지방자치 부활 20년이 다가오고 있다. 당시를 회상하면 지방화 시대가 개막하고 지역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란 기대와 희망이 있었다. 곳곳에서 지방자치 학교가 열리고, 의정모니터와 참여를 위한 시민모임이 만들어졌다. 의회가 열리고 '정보공개 조례에서부터 학교급식조례' 제정 운동이 벌어지는 등 주민참여와 삶의 질 개선을 위한 정책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행정 서비스가 개선되고 시청과 구청에 가면 반갑게 웃는 얼굴의 안내 도우미도 생겨나고 공무원의 민원서비스도 친절해 졌다. 시민단체가 주장하던 주민소환제, 주민소송제, 감사청구제, 참여예산제 등이 형식적이나마 도입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시민들은 지방자치에 대해 불신과 냉소를 보내고 있다. 지역 발전과 혁신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고, 단체장을 바꿔봐야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실망감에서 시작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는 고사하고 제왕적 단체장의 독선행정 심화와 보수 기득권 집단의 권력만 강화시켰다는 냉소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지방자치 20년은 표피적인 측면에선 행정서비스와 주민참여가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만, 지방자치의 본질적 가치인 참여, 자치, 분권, 공동체성 측면에서 보면 단체장의 독선과 독주, 참여의 형식화, 중앙 종속형 지방자치, 지역 이기주의 심화 등 많은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지방자치 20년 무엇이 문제인가?

 1) 선거는 하지만 인물은 변하지 않는다

 4년 주기로 선거는 하지만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지방정치는 여전히 행정관료와 기득권을 형성한 지역유지들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 현 광역단체장의 75%가 정치인과 공무원 출신이고, 기초 자치 단체장의 73.5%가 공무원과 정치인 출신이다. 자치단체장이 중앙과 지방 관료출신의 정년연장 수단으로 전락하여 과거 행정을 답습하며 주민이 바라는 혁신적인 지역정책은 제시되지 않는다.

 의회의원도 예외가 아니다. 한겨레신문이 2005년 6월 서울 경기 인천 지역 기초의원 출신경력을 조사한 결과 전체 1,126명 가운데 37.5%인 422명이 3대 관변단체(새마을, 바르게살기, 자유총연맹) 출신이었다고 한다. 또 이들의 직업을 살펴보면 농축산업, 상업, 건축업 등의 비중이 타 직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보수 기득권 위주의 인물충원구조는 토건중심의 개발주의 정책만 난무하고 지방자치의 혁신적인 변화를 가로 막고 있다. 풀뿌리 생활정치는 자취를 감추고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이 배제된 무늬만 지방자치가 지속되고 있다.

 2) 선거과정에서부터 싹트는 비리와 예산낭비

 지방자치단체장들의 권한은 택지개발, 골프장 조성 등 각종 사업 인·허가권과 인사권, 예산편성 및 집행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처럼 막강한 권한을 가진 단체장과 지역 토건업자, 자영업자 등은 선거이전부터 선거자금제공과 학연 지연 등으로 유착되어 당선이후 정책 결정까지 이어진다.

 "이동희(65) 경기도 안성시장은 관내 골프장 회장으로부터 선거운동비 명목으로 3천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불구속 기소되었으며, 이종건(67) 전 홍성군수는 버스공영터미널을 자신이 일부 소유한 현 터미널 부지에 건립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3년6개월에 추징금 5천만원을 선고받아 군수직을 상실"한 사건 등이 하나의 사례이다.

 2009년 말 현재 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230명 가운데 42.2%인 97명이 각종 비리와 위법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단체장 비리유형은 공천헌금 제공, 인사권 남용, 골프장 인허가 및 이권관련 뇌물 수수, 업무추진비 전용, 공직선거법 위반 등 실로 다양하다. 문제는 이러한 부패가 불필요한 개발사업의 추진, 업자에 대한 편법적인 단가인상 등 지방정부 예산을 축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조화된 부패 고리가 더 큰 혈세낭비로 이어지고 있다.

 3) 감시와 견제 없는 독선행정

민선 4기 한나라당 일당 지배의 지방정치 구조는 단체장의 일방적 행정 독주 심화로 귀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견제기능은 취약하기만 하다. 민을 대변하여 통제기능을 담당해야 할 지방의회는 재정, 인사권의 종속, 전문성과 자질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에 더해, 거의 모든 지역이 특정 정당에 독점되어 집행부의 거수기로 전락해 있고, 시민사회의 성숙은 미약하며, 언론의 취약한 재정기반은 지방행정 권력에 대한 비판기능 상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단체장의 일방적인 독주와 독선이 존재하는 곳에서 주민의 의견이 행정과정에 반영되기 어렵고, 지방자치의 핵심가치인 주민참여에 의한 지역거버넌스 체계의 형성도 불가능하다.

4) 형식만 남은 주민참여 제도

시민의 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형식적이고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민참정권 확대를 위해 시작된 주민투표, 주민감사청구, 주민소송, 주민소환제는 유명무실하며, 정보공개, 참여예산, 시민옴부즈만 제도는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지 못한다.  형식은 있으나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늘 참여에 목말라 하고 있다. 많은 시민단체에서 부패하고, 부도덕한 광역, 기초의원 소환운동이 있었으나 제도와 관습의 한계를 넘지 못해 소환투표로 이어지지 못하고, 제주지사와 하남시장의 주민소환 투표는 투표율 상한규정으로 개표도 못하고 무산되었다. 주요 정책 결정의 통제를 위한 주민투표제도 무용지물이긴 마찬가지이다. 또 정보공개 제도는 있어도 기일 미준수와 부실한 정보공개에 대한 벌칙규정이 없어 시민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어렵다.

지방자치 무엇을 바꾸어야 하나

1) 독선행정을 '협력적 자치'로

단체장의 독선적인 정책결정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느냐가 지방자치 혁신의 출발이다. 단체장의 지방권력 독점화는 경직성, 폐쇄성, 관료주의 등 비민주적 지역사회를 만든다. 이에 정부실패를 예방하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새로운 지방정부 운영 모델이 필요하다.

즉 지방정부가 소수 기득권 세력의 이익추구 실현의 장이 아닌 권력과 예산의 다원적 배분과 네트워크에 기초한 협력적 통치구조 즉 '지역혁신을 위한 민관정책협의회' 설치와 같은 지역내의 상위 거버넌스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 또한 민선 5기에서는 의회의 견제기능 회복으로 단체장과 의회 권력의 균형, 여야 정당간의 세력균형, 의회와 시민사회의 협력, 시민사회 네트워크 강화 등이 실현되고, 다양한 수준의 네트워크에 기초한 거버넌스형 정부운영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2) 주민소환제 등 주민 참정제도 개선

지방자치는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보완하면서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해 나가는 것을 지향한다. 따라서 참여 없는 자치는 허구이다. 또 시민의 참여가 없는 지방자치는 행정의 신뢰를 확보할 수 없다. 그러나 주민 참여 확대를 명분으로 도입된 투표율 상한제는 소환투표에서 투표 불참운동을 유발하여 투표율을 역으로 낮추는 역기능을 하고 있으며, 주민투표제는 도입되었으나 지역 정책을 결정하는데 실질적으로 활용된 사례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의 경우 투표율 상한제(19세이상 유권자의 3분의 1이상 투표)의 폐지 또는 완화(20%), 주민투표 대상에 자치단체 패치 분합, 중앙정부 정책사업 등 예외규정의 축소와 우편투표, 인터넷투표의 적용으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 제도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인사위원회, 사회단체 보조금 심의위원회, 도시계획위원회등에 노조와 시민단체 등 비판그룹의 참여를 보장하고, 정책수요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아동위원회, 청소년위원회, 소수자 위원회 등 성과 연령과 소득의 차이가 참여를 제약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참여예산제 도입과 예산 낭비 감시

단체장과 공무원에 독점된 예산편성 권한으로 꼭 필요하지도 않는 도로건설, 공공청사 건립 등에 혈세를 낭비하고 있음에도 이를 통제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따라서 단체장의 독선으로 인한 예산낭비를 예방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제'의 실질적 운영이 시급하다. 현재 광주 북구, 울산 동구 등 많은 지자체에서 참여예산제를 도입하였으나 실질적인 예산결정 권한이 없는 자문기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위원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고, 단지 의견만 제시하는 형식적 기능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지방정부 예산 편성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제 도입, 시민참여예산위원회에 독자적인 예산편성권부여(각 지자체별 자체 편성 재원의 10%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상향조정), 공개적인 예산공청회 운영, 건설 토목부문 예산 감축목표 설정(기존예산의 30% 감축 등) 등 참여예산제도를 재정민주주의 실현의 실질적인 도구로 만들어야 한다.   

4) 감사기구 독립성 확보로 부패 예방

민선4기 지방자치의 부패는 심각한 수준이나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자체감사제도는 무용지물임이 확인되고 있다. 인사위원회는 있으나 인사비리가 만연하고, 자체 감사기구가 있으나 공직 비리 예방과 적발이 전무하다. 또한 일당 지배의 지방의회는 단체장의 독선과 정책실패 및 각종 비리를 견제하지 못하는 거수기 역할만 하고 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먼저 감사기구의 독립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감사위원회 위원장 민간위원 선임 및 감사위원장에 대한 의회 동의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또 공공기관 감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7월 1일부터 시행되는 개방형 공모제의 경우 감사 책임자 추천기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추천위원 선정의 공개성과 추천기구 운영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인사위원회에 노조, 시민단체 등 비판그룹의 참여를 보장하여 근무성적 평점 조작, 편법승진 등 인사비리를 예방하도록 해야 하며, 주민 감사청구제도를 활용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기능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특히 지방의회의 견제와 감시기능 회복으로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가 집행부 통제의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참여해야

  지방자치가 부패와 독선으로 주민의 지지를 상실한 것은 검증시스템이 없는 후진적 정당공천 관행과 유권자의 선택실패 탓이다. 또 제왕적 단체장의 권력을 용인한 자치제도 자치의 결함도 함께 하고 있다. 모든 문제가 현 지방자치 단체장과 의원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의 지방자치를 구하는 방법도 문제에 대한 냉정하고 통합적인 진단에 기초해야 한다. 우선 좀 더 투명하고 공정한 후보검증 시스템과 유권자의 감시, 지방정치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는 일당 독재의 정당독점구조의 해체와 의회의 권한 및 전문성 강화, 묻지마식 줄 투표 행태의 극복, 시민사회와 언론의 감시 견제 참여 확대, 정보의 공개 등이다.

 이중에서 관료중심의 지방정치 충원구조, 여·야간의 세력균형과 감사제도의 개선, 참여예산제 등 일부만이라도 이번 선거를 통해 개선된다면 지방자치 무용론과 같은 극단적 불신은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는 저절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로부터 시작된다.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나의 참여로부터 희망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