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의 도시, 청주공항의 관문을
고려시대 전통건축으로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청주에서 23년째 전통한옥 건축일을 하고 있는 젊은 장인이 있다. 바로 내수 한울건축 대표 이일호 도편수다. 그는 현재 사단법인 충청북도 문화재능인협회 사무국장 일을 하며, 우리 지역의 전통 장인들과 함께 전통건축 문화를 알리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길 위의 재봉이, 오늘은 이일호 도편수를 만나 장인으로 사는 보람과 어려움을 직접 들으며, 전통건축 장인이 바라보는 문화도시 청주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인텨뷰 : 이일호 한울건축 대표(충북문화재능인협회 사무국장)
일시 : 2023년 4월 19일, 내수 한울건축 사무실
▪ 송재봉 : 안녕하세요? 대표님. 오늘 여기 오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한옥 짓는 분들은 몇 분 만나 뵈었지만 전통 건축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눠 본 적은 없더군요. 그래서 오늘 대표님과는 주로 제가 많이 듣고 배우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표님은 전통 건축을 하시는 분 중에는 젊으신 분에 속할 것 같아요. 지금 하시고 계신 일과 먼저 해주시고 싶으셨던 얘기들을 편하게 말씀해 주시면 잘 듣겠습니다.
▶ 이일호 도편수 : 저는 내수에서 ‘한울한옥’을 운영하며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있고 현재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제가 한옥 짓는 일을 시작한 지가 20년이 넘었는데도 현장에서 아직 막내에요. 바로 제 위 선배님들 연세가 60대와 70대뿐 아니라 80대이신 분들도 계시거든요. 이렇게 연령대별로 고루 장인들이 계시다 보니 전통건축 방면에서는 충북의 인적 인프라가 전국 최고라고 말씀드릴게요. 또 우리 지역장인들의 실력이 좋다 보니 충청도 지역의 문화재 현장에 참여했었다고 하면 전국의 모든 현장 책임자들도 인정해 주고 계시죠. 정작 지역에서 그 사실을 몰라 주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 송재봉 : 그렇군요. 모두 다 어려운 시기라고들 하시는데요. 대표님께서도 전통 건축일을 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실 텐데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 이일호 도편수 : 네. 아무래도 안정된 일자리 즉, 일감문제죠. 저도 현장에서 실제로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일감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최근 내수에도 초정행궁사업이 있었잖아요. 우리 내수만 해도 한옥을 지을 수 있는 팀이 네 팀이나 있어요. 좀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인적자원은 이렇게 갖춰져 있는데 한 팀도 그 사업에 참여를 못 했습니다.
우리 지역이 최고의 인적자원을 갖고 있는데
초정행궁사업에 한명도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 송재봉 : 말씀을 듣다보니 (그 일은) 저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네요. 이런 문제들을 담당부처에 이야기해 보셨나요? 전통 건축을 하시는 분 입장에서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이일호 도편수 : 제가 초정행궁사업 당시에 지역구 시의원이나 문화재 관련 시 담당자분께 말씀드린 내용이 미리 사전 조사나 협의를 했더라면 우리 지역장인들을 활용할 수 있고 그랬으면 내 집 앞에 내가 짓는 집이니 더욱 정성을 다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요. 100% 입찰이라고는 하지만 일정 부분은 지역장인들의 참여가 가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고령이신 장인들이 현장에서 갈고 닦은 평생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뿐 아니라 일반시민이나 지역사회에 다 풀어 전수를 해주셔야 하는데 그런 공간이나 체험장소가 전혀 없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 송재봉 : 장인분들의 고령화도 생각해 볼 문제군요. 저도 그분들의 기술과 경험은 꼭 우리가 전수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일호 도편수 : 그렇습니다. 현재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으신 분들은 거의 공예를 비롯한 생활 민속 관련분야이고 전통 건축 쪽으로는 개인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 한옥 건축 일이 어느 한 분야의 장인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대목부터 시작해서 소목, 와공일 등 저희 일이 스물네 개 분과로 나뉘어 있어요. 저의 바람은 모든 분야의 장인들이 다 같이 참여할 수 있는 전통 건축 종합 전수관 또는 체험관이 마련돼서 원로 장인들이 할 일을 해주셨으면 하지요. 전수관이나 체험관이 마련되면 우리 지역 원로 장인들이 그 안에서 강의도 하고 교육도 직접 하는 공간이 될 거고요. 저도 그런 바람을 갖고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송재봉 : 대표님 말씀을 듣고 보니 원로장인들이 강의도 하고 실습도 하는 공간을 초정행궁사업을 하면서 함께 조성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일호 도편수 : 저도 초정행궁 또는 문의 문화재단지 쪽에 전수관을 만들면 청남대와 연계해서 관광코스로도 수요가 있겠다 싶습니다. 청남대를 보고 온 사람들이 가까운 문화재단지 안에서 전통 건축이 이루어지는 체험도 할 수 있고 교육도 이뤄지는 장소가 되면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 송재봉 : 지금 하신 말씀들이 대안이 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말씀하셨던 일감이나 일자리 문제를 여쭙고 싶은데요. 대부분의 전통 건축물이 목조로 되어 있고 이런 건축물은 절이나 문화재일텐데 이런 것들은 충북보다는 주로 서울·전주 또는 경주 쪽에 많을 것 같고요. 그럼 일터는 주로 다른 지역이신 건가요?
▶이일호 도편수 : 지금 상황이 그렇습니다. 충북에 있는 문화재 수가 전국에서 제일 적어요. 게다가 한옥을 콘텐츠로 하는 사업들이 우리 지역 충북에는 거의 없습니다. 이런 사업들은 전라권과 경상권 지역에 많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역에서 관련 사업이 있으면 지역 장인들이 참여해서 일할 수 있게 조례라도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이란 말에는 지역성이 녹아 있어요. 우리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시장이 확보돼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정책 고민이 없습니다. 전통 건축 분야를 시장경제 논리로 스스로 생존하라고 하는 것보다 공공성을 갖고 조례라도 만들어 일감문제를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송재봉 : 지금 이 일을 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됩니까? 또 말씀하신대로 지역사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직접 이 일을 하시면서 생각해 오신 방법이나 대안은 어떤게 있으신가요?
▶이일호 도편수 : 저희 협회가 있습니다. 명칭이 '충북문화재기능인협회'라고 하고요. 150명 회원이 있어요. 자격이라고 하는 것은 대목 몇 호, 와공 몇 호 이런 식으로 전문자격이 등록된 분들입니다. 이분들의 거주지는 80~90%가 청주분들이시고요. 저는 전통 건축장인들의 일자리를 위해 전 교육감님도 만나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학교에는 강당이나 체육관이 있잖아요? 그런 거와 같이 학교마다 한옥교실 하나씩 지으면 좋겠다고요. 또 한옥교실을 지을 때 입찰로 건설회사를 선정하기보다 지역장인들이 참여하게 하고 짓는 과정 자체도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교육의 장이 되게 하면 좋겠다는 제안도 드렸죠. 전 교육감님께서도 긍정적이셨는데 계획이 중단된 지금 매우 아쉽습니다. 고민하는 김에 우리가 문화재를 원형 복원해서 후대에 전수해 주는 것도 좋지만 이 시대의 모든 것을 담아서 문화재를 새로 만들어 후대에 남겨 주는 것도 저희 전통 건축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마다 한옥교실 하나씩 있으면
지역 장인들도 참여할 수 있고, 아이들 교육에도 참 좋을 것 같아요
▪ 송재봉 : 그 말씀 하시니 갑자기 생각나네요. 목조건축도 시대에 따라 기술이 발전하잖아요? 고층 건물도 목조로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가능한가요?
▶ 이일호 도편수 : 지금 지어지고 있는 고층 목조건물은 없지만 우리 지역 진천에도 보탑사의 5층 목탑건물이 있습니다. 10층 이상도 가능하다고 보고요, 또 전통 양식이 아닌 목조건축은 20층 30층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 송재봉 :그렇군요. 전통 한옥이 오히려 지진에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지요?
▶이일호 도편수 : 제가 보는 한옥은 내진설계 공법이 들어가 있는 건축물입니다. 예전에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일반 건축물은 금이 가고 무너지기도 했지만, 전통 건축물은 기왓장만 떨어졌을 뿐이었어요. 한옥은 땅에 고정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냥 땅에다 받쳐 놓는 방식이라 지진이 나면 나무와 나무 사이의 짜맞춤이 자체적으로 움직이며 충격을 흡수하기 때문이죠. 수덕사의 대웅전이 아직도 버티고 있잖아요. 긴 세월 지진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아직 우리 눈앞에 남이 있는 건물들이 많습니다.
▪ 송재봉 : 제가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생각으로 지금껏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을 뵈었고 그때마다 배워야 할 것들이 많는 생각을 하는데 오늘 말씀들을 들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들려주시는 내용을 잘 듣겠습니다.
▶이일호 도편수 : 청주를 ‘직지의 도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작 직지는 청주에 없어요. 직지의 시대적인 문화 즉 고려시대 문화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거리들이 있어야 하는데 청주에는 고려시대 건축물도 없고 그 시대의 문화도 없으면서 청주를 직지의 도시라고만 하고 있는 거예요. 청주가 우리나라에서 고려시대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려면 지금부터라도 고려시대 전통 건축기법으로 건축물들을 지어야 하고, 이후에 청주에 가면 고려시대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송재봉 : 고려시대의 전통 건축기법을 말씀하셨는데 그 시대의 건축양식이 특별히 다른 게 있나요?
▶이일호 도편수 : 그렇습니다. 지금 지어지는 전통 건축은 조선시대 후기 양식이에요. 다포양식이나 익공 형태가 조선시대 행해졌던 양식이거든요. 그런데 수덕사 대웅전,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을 가 보시면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졌어요. 기법부터 차이가 있어요. 고려시대 건축물은 심플하면서도 웅장한 반면, 조선시대 건축물은 실용적이지만 복잡해보이기도 하지요. 다른 지역에 없는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 청주에 있다면, 이거 하나만 가지고도 청주는 어디 내놔도 손색 없는 문화도시가 될 거라고 봅니다. 특히 청주공항의 관문을 고려시대 기법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 송재봉 : 청주공항의 관문이라고 하면 어디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이일호 도편수: 공항에 들어가는 입구 쪽인데요. 현재는 석축처럼 돌담만 쌓아 놓은 형태에요. 그 쪽이 버스노선도 있는 주요 통로인 만큼 청주를 대표할 만한 상징물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요.
직지의 도시, 청주공항 관문을
고려시대 건통건축 양식으로 지으면
청주가 손색없는 문화도시가 될 겁니다
▪ 송재봉 : 말씀을 듣고 보니 고인쇄박물관 주변에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체험과 학습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 대표님을 도편수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도편수는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이일호 도편수 : 도편수는 전통 건축에 있어서 처음과 마지막까지 전체를 아울러서 일을 지휘하는 역할입니다. 오케스트라로 보면 지휘자죠. 처음 한옥을 지을 때 터 파기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공정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 송재봉 : 전통 건축 현장에서는 없으면 안 되는 분이시네요. 제가 아는 것은 대목수가 계시다는 거고 그다음 일 하시는 분들은 잘 모르겠어요.
▶이일호 도편수 : 네. 대목수가 있고 그다음 와공이 있고, 석공도 있고, 조각공도 있습니다. 요즘엔 구들만 전문으로 하시는 구들공도 있고요. 각 직종별로 24개 분과가 있습니다. 집을 지으면서 가장 중요한 골격 즉, 집의 뼈대를 만드는 게 대목의 일이고요. 그분을 대목수라고 부르고 그 중 우두머리를 대목장이라고 해요. 예전에는 대목이 혼자서 집을 거의 지었다면 지금은 점점 분업화되다 보니까 현장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만 하지요. 저도 대목 출신이지만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게 대목은 당연히 공정을 알아야 하지만 다른 팀원들도 그런 것을 모르면 반쪽짜리 집을 지을 수밖에 없으니 항상 고민하고 배우라는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 송재봉 : 우리 지역에 대목장은 딱 한 분이신가요? 다른 지역에 대목장님이 좀 더 계시나요?
▶이일호 도편수 : 네, 지금은 내수 초청에 계시는 이연훈님 한 분이십니다. 그분 위에 계보가 신재현 대목장님이 계셨는데 몇 해 전에 갑자기 타계하셨어요. 그 후 1~2년 공석으로 있다가 제자이신 이연훈 님이 무형문화재 대목장이 되셨어요. 원래 무형문화재가 같은 직종에 최대 세 분까지 지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수도권이나 충남 대전에도 다 한 분씩은 지정돼 있어요. 그런데 예산 문제로 이어지다 보니 없는 지역도 있습니다.
▪ 송재봉 : 대표님을 부를 때 이일호 도편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쉽게 부르기 어려운 게 말씀하신 대로 현장에서 가장 젊다고 하셨잖아요? 이 전통 건축 쪽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고, 또 누구의 제안을 받으셨던 건지 궁금하네요.
▶이일호 도편수 : 군대 제대 후에 편입 준비하면서 시골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릴 겸 학비를 벌 요량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올해로 23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 송재봉 :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차원에서 시작하신 일인데 지금껏 해오고 계신다면 이 일에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거겠지요?
▶이일호 도편수 : 그렇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전공했는데 당시의 기술은 익히는 순간 신버전이 계속 나오니까 내가 익힌 것들은 구버전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전통 기술은 배우고 익히면 익힐수록 묵으면 묵을수록 인정을 받는 거예요. 거기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사장님을 저는 고객으로 생각했어요.
▪ 송재봉 : 일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고 관점을 완전히 달리하셨네요?
▶이일호 도편수 : 네. 오히려 사장님께 돈을 받고 일하지만, 저분은 나의 고객이라고 생각하고 일에 최선을 다했더니 그 모습을 보시고 선배님들께서 10년만 해 보라고 하시고 10년이 지나니 이일호는 일 좀 하네 하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10년을 더 한 후에 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직접 창업을 하고 그동안 제가 고민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의 일이 재미있어졌어요. 돈 버는 일 자체가 재밌다는 것이 아니고 그동안 가장 시급했던 안정된 일자리를 팀원들과 함께하면서 땀을 흘리고 제대로 보상받고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에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문화재기능협회 사무국장을 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우리 협회 회원 작품전이에요. 회원들이 평생 일터에서 해왔던 일들이지만 대목, 소목, 와공 등 분야는 다 다르거든요. 그것들을 작품으로 만들어서 전시하고 시민과 현장에서 체험도 하고 우리 지역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걸 알리게 되었어요. 벌써 2018년에 시작했으니까 작년까지 5회, 6회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23년째 전통건축 일을 하고 있는데, 전통 건축은
배우고 익히면 익힐수록, 묵으면 묵을수록 인정을 받는 거예요.
▪ 송재봉 : 전시회는 어디에서 열렸고 전시회를 준비하시면서 협회 회원들께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이일호 도편수 : 첫해에는 문화산업단지 로비에 갤러리가 있어서 그곳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마침 그때의 도록이 여기 있네요. 그때 제가 현장에 계신 선배님들께 한 말은 '지금까지는 우리가 쟁이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스스로 우리의 가치를 만들어봅시다'였어요.
▪ 송재봉 : 그럼 전시회는 입체감도 있고 그랬겠는데요? 모형을 직접 제작해서 하셨나요?
▶이일호 도편수 : 네. 자기들의 전공을 다 직접 하신 거예요. 이 도록 보시면 금으로 도금한 것도 있지요. 이 분은 도금 전문가이고, 석조각을 하는 분이십니다.
▪ 송재봉 : 도록을 보니 분야 별로 재미있네요. 전시했던 기와도 보이고, 마루도 제작해서 전시한 것도 있네요. 대표님, 앞으로 매년 전시회를 하실 생각이신가요?
▶이일호 도편수 : 네,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려고 합니다. 제가 처음 전시회 계획서를 도 담당 팀장님께 드리니 여기에 대해 모든 설명을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담당자 본인이 알아야 의원님들께 설명하고 설득해서 예산을 받아 올 수 있다고요. 그래서 제가 한 두 달은 계속 방문해서 설명을 해드렸었지요.
▪ 송재봉 : 그분도 필요한 전시회라고 생각을 하셔서 그랬겠지만, 그 담당 공무원도 훌륭하시네요.
▶이일호 도편수 : 이런 사례가 전국적으로도 많지 않습니다. 지역에서 작품전을 하고, 현장에 직접 지은 작은 한옥에서 시연하면서 시민이 직접 보게도 했지요.
▪ 송재봉 : 저도 그런 것들이 중요한 것 같네요. 실제로 본 적도 있고요.
▶이일호 도편수 : 맞아요. 공예 비엔날레 사전 행사로 저희가 했었지요.
▪ 송재봉 : 박물관에도 가 봤지만, 글로만 쓰여있고 심지어 유리관 안에 박제화된 문화재만 들여다보면 무슨 감동을 느낄까요? 현장의 체험중심 문화체험행사가 많았으면 했는데 이미 이런 방법들로 실천하고 계셨네요. 전시회를 하시는 이유도 이해가 되고요. 관광 효과 면에서도 상설전시관이 있으면 좋겠네요.
▶이일호 도편수 : 저의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시유지든 국유지든 장인들에게 공간을 마련해 주어 지역주민께 시연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런 것들이 진행된다면 예산도 의미 있게 사용되는 거고요. 저희가 이미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공간만 마련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 송재봉 : 대표님 지금까지 많은 전통 건물을 지어 오셨지만, 그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건축물은 어떤 것인가요?
▶이일호 도편수 : 월명사 안의 삼성각이 제가 지은 건물입니다. 월명사는 청주 들어오는 관문인 강내면 충청대학교 근처에 있는 사찰이에요. 그곳에 있는 삼성각이 우리 팀이 지은 건물인데요. 청주를 대표하는 건물을 짓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설계부터 시공까지 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주심포 공법인데요. 삼성각이 바로 고려시대의 주심포 공법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축대 하나를 쌓아도 성벽 쌓는 기법으로 그렝이질 해가면서 쌓았고요. 기단은 현대적인 기단석으로 만들었어요.
▪ 송재봉 : 그렇군요. 월명사에 가게 되면 삼성각이 이일호 도편수님 작품이구나 하고 보겠습니다. 그럼 주로 대표님께서는 사찰을 많이 지으시는 건가요?
▶이일호 도편수 : 주로 전통 건축으로 짓는 건물들은 사찰이 많습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청주에는 한옥 조례가 있지만, 조례만 있고 예산은 없어요. 저는 이 점이 안타까워서 담당 부서에 해마다 예산책정 여부를 문의하지만, 신청자가 없어서 예산을 못 세우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예산을 1년에 한 채씩만이라도 먼저 책정해 주면 홍보와 영업을 직접 해서라도 우리 지역에 한옥을 늘리고 싶습니다. 조례상 보조금액은 시에서 6천만 원, 도에서 2천만 원으로 총 8천만 원이에요. 여기에 다른 지역처럼 일반 개인 주택을 지을 때 저리로 1억 원까지 대출해준다면 2억 원 가까운 금액으로 한옥 짓는 분들이 생길 거라고 봅니다.
▪ 송재봉 : 저도 청주의 원도심 활성화 방안으로 기왕 새로 짓는 건물들은 한옥으로 지어서 원도심 분위기도 바꾸고 국내외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한옥 역사문화지구 지정을 계획했었습니다. 여기 있는 작은 한옥은 어떤 용도로 지으신 건가요?
▶이일호 도편수 : 여기 보고 계신 작은 한옥은 농막용인데 농막 기준에 맞추어 6평으로 지어 봤습니다. 저희 한울 한옥 브랜드 이름이 ‘생명가온’ 이거든요. 농막 하나도 몸에도 좋고 주변 자연과도 어울리는 한옥 농막이 좋을 것 같았어요.
▪ 송재봉 : 생명가온이라는 이름도 마음에 와닿고요. 대표님 말씀 듣다 보니 저도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우리 건축인 한옥에서 살고 싶어지네요. 대표님께서 사업을 하신 지는 얼마나 되신 거고 함께 하시는 직원은 몇 명이지요?
▶이일호 도편수 : 저희 팀은 모두 다섯 명입니다. 하지만 현장의 일이 큰 규모일 때는 우리 지역 네 팀이 협력해서 일할 때도 많습니다. 실례로 수도권 쪽의 영상단지 공사 때는 20~30명이 함께 일하기도 했었는데 이런 인적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것을 우리 지역에서는 몰라주니 늘 아쉽습니다. 가까운 초정행궁사업에도 저희가 참여하지 못한 것은 정작 지역장인들에 대한 관심도나 사전 조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 송재봉 : 초정행궁은 다 지어지지 않았나요? 대표님께서 보시기에 초정행궁에 대한 문제점이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이일호 도편수 : 저는 체험 숙박동을 새로 지었으면 하고 생각하지요. 그 이유는 현재 난방이 전기 판넬로 되어 있습니다. 겉은 한옥이지만 중요한 구들이 없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한옥은 아궁이에 불때서 아랫목이 뜨끈뜨끈한 구들방이 있어야 하거든요. 가까운 공주 한옥마을의 한옥은 구들이 있어서 그곳은 아궁이에 불을 때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정행궁은 전기판넬 위에서 자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저라도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을 거예요. 초정행궁 숙박동 모두가 전기판넬 난방이라서 그 이유를 담당자에게 문의한 적이 있었어요. 답변내용은 관리의 편의성과 화재의 위험 때문이라고 하는데 제가 볼 때 이것은 사용자 중심이 아닌 관리자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종행궁 체험숙박동 전기판넬 방에서
하룻밤 보내면 다시 안 올 것 같아요.
한옥은 뜨끈뜨끈한 두들방이 있어야 하거든요
▪ 송재봉 : 한옥이지만 구들을 놓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계시네요?
▶이일호 도편수 : 만약 불 때는 아궁이가 있다면, 땔감 만들기부터 숯을 통한 고구마와 밤 구워 먹는 체험도 할 수 있으니 파생되는 아이템들도 많아졌을 거예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관리하기 편해서 전기판넬 시공을 한 점이 아쉽고, 방문한 분들은 좋은 추억이나 경험이 적다보니 홍보와 추천도 하지 않게 되면서 재구매율도 낮다고 봅니다.
▪ 송재봉 : 그렇군요. 체험담이 있어야 하고 그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어야 많은 사람에게 회자돼서 방문객이 늘어 날 텐데 그런 것들이 없다면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말씀이시죠?
▶이일호 도편수 : 네 저는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초정행궁 조성할 때 석가래 하나만이라도 시민들이 직접 대패로 깎아 보고 그 서까래에 자기 이름도 쓰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지나갈 때마다 자기 이름을 찾아볼 수 있어서 시민의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해 봤던 거예요.
▪ 송재봉 : 지금 미원에 공예마을을 조성하고 있지요? 그곳 공예마을 건물들은 한옥 건물로 지어지지 않을까요?
▶이일호 도편수 : 제가 알기로는 1층은 일반 콘크리트로 건축하고 2층에 한옥을 올린다고 들었습니다. 대표적인 공공시설물들은 한옥으로 짓고 모든 한옥 관련 건축은 신응수 대목장님이 진행한다고 사업설명회 때 홍보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행사주관 회장님께 면담을 요청해서 지역에 관련된 장인들이 많으니 저희도 같이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드렸습니다. 대외적인 홍보가 필요해서 신응수 대목장님이 큰 프로젝트들을 진행해도 실제 일이 시작되면 다시 조정해서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씀은 그분께 들었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송재봉 : 아직은 지역 장인들이 참여가 결정된 단계는 아닌가 보네요.
▶이일호 도편수 : 네. 실례로 재작년에 진천에 있는 이상설 선생 생가를 복원했거든요. 그때도 강원도업체가 입찰을 받아 복원작업을 했어요. 제가 진천문화원장님께 우리 지역에도 이런 일 할 수 있는 분들이 계시니 지역장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그때도 부탁드렸었지요. 그런데 처음엔 긍정적이시다가 어려운 점이 있었는지 결국 참여를 못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가면 그 지역 관내 업체나 지역장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테두리를 다 해 놓거든요. 유독 충주나 충북이 그런 장치가 약한 것 같습니다.
▪ 송재봉 : 지역 제한 입찰로 가능했었는데, 우리 지역에 더 잘 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장인들이 있음에도 실제 일에 참여를 못 했다면 힘 빠지는 거잖아요. 저도 이런 문제점은 중요하게 살펴봐야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지금껏 이 일을 해오시면서 이 일이 지속 가능한 일일까 하는 고민과 후세대를 어떻게 키워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이실 것 같아요.
▶이일호 도편수 : 그렇습니다. 선배님들은 젊은 사람들이 현장에 없다는 말씀만 하시지요. 그러나 그 고민을 함께 풀어보자면 결국 젊은이들이 안 오는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명예를 얻는 일도 아니거든요. 무언가 있어야 젊은 사람들이 투자도 하고 도전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제가 회사를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걸 찾아 주기 위해서예요. 지금 이 일을 배우고 싶은 젊은 사람들은 최저 시급을 받더라도 4대 보험 혜택을 받는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저로서는 그분들 모두를 정규직으로 함께 해 나가기가 가장 힘든 일입니다. 제가 일을 배우던 때는 제 차에 기름도 제가 넣어가며 하루 일당 5만 원을 받아도 배우는 것이 좋아서 몇 년을 투자했었어요. 지금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하거든요. 그래도 저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관심이 있어서 이 일을 해 보려고 찾아온 분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저에게는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그다음은 한옥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 문제예요. 초중고에서도 우리 전통 한옥이나 전통 건축에 대해서 전혀 다루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점차 우리 한옥이 우리의 전통 건축임에도 불구하고 민속촌이나 TV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교육청에 제안한 것도 학교에 한옥교실 하나씩 지어서 이것이 우리의 전통 건축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 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장인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과정도 보여주고 직접 체험도 하게 하는 일은 저희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기록입니다. 영상과 사진 그리고 글로 기록을 계속 남겨서 쌓이고 쌓인 자료가 후대에 잘 활용될 수 있게 우리 스스로 해 나가야 하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 송재봉 : 저도 그런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오늘 말씀해 주신 청주공항의 관문 이야기고 인상적으로 들었어요. 공항이 그 도시의 첫 느낌을 주는 상징적인 곳인데 너무 특색이 없다는 거였지요?
▶이일호 도편수 : 외국인들이 공항에 내려서 청주로 들어오는 곳이 공항 관문인데 이곳에 청주를 대표하는 전통건축 양식의 상징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던 겁니다. 지금은 그런 특징적인 것이 없어서 밋밋함만 느끼는 것 같아요.
▪송재봉 : 맞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동안 우리 청주가 도시 전체를 봤을 때 도시를 디자인하고 새롭게 꾸며서 특색있게 하거나 청주를 상징하게 하는 작업을 잘 못 해왔던 거 같아요. 그 점은 오늘 들은 말씀들을 참고해서 꼭 풀어야 할 숙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갑자기 연락을 드렸는데도 한옥조례를 포함한 기타 지원 방안 등 여러 가지 현장의 문제를 생생하게 말씀해 주셔서 제가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배우고 가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일호 도편수 : 저도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역의 일에 지역의 장인들이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송재봉의 청원 감성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길 위의 재봉이 14 - 기술 개발로 일궈낸, 유진테크놀러지 이미연 대표 (5) | 2023.06.29 |
---|---|
길위의 재봉이 13 - 농촌마을을 지키는 고상찬 북이면 화상2리 이장 (2) | 2023.06.12 |
길위의 재봉이 11 - 박홍용 충북중증장애인복지협회 회장 (0) | 2023.05.29 |
길위의 재봉이 10 - 청주 지역 한센인들의 친구, 정상구 목사 (0) | 2023.05.29 |
길위의 재봉이 9 - 충북 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 이정연 팀장 (0) | 2023.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