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내인생의 첫수업] '뿔달린 백성'과 '피를 먹고 자라는 민주주의'

송재봉 2008. 11. 3.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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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 가드너는 ‘통찰과 포용’에서 “사람들은 만5살 정도가 되면 이미 마음과 물질에 대한 간단한 이론들로 구성된 ‘교육받지 않은 마음’을 구축하여 새로운 의견의 수용을 무척 어렵게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성인들은 자신들이 아주 어렸을 때 갖게 된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고 했다.” 그만큼 한번 형성된 관점을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세상이 변했다. 시민이 변했다 그러니 당신들도 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사고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교육받지 않은 마음처럼 이미 형성된 관성이 변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창의적 변화를 이야기 하면서도 과거의 방식을 단순 반복하고 있는 나와 우리를 또 다시 보게 된다. 지금 이 사점, 교육받지 않은 마음을 깨고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던 한 은사님의 말씀을 다시 떠 올려 본다.

 고등학교 2학년, 그러니까 1984년 봄쯤 되었던 것 같다. 화기애애하던 하숙집 분위기가 냉랭해지고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던 기억을 하다보면 지금도 가끔 얼굴이 화끈거리곤 한다. 같은 하숙집에 동거 동락하던 대학생 형들과 언론의 뉴스보도를 앵무새처럼 되 뇌이던 고등학생들 사이의 시국에 대한 논쟁의 결과는 너무도 분명한 결론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래도 참을성 있는 대학생 형들은 우리의 주장을 억누르거나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너희도 대학을 가보면 알게 될 거야, 지금의 생각이 모두 옳다고 고집하지만 말라는 말로 에둘러 답답한 심경을 표현하고 했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국가를 혼란스럽게 하고 김일성을 이롭게 하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세 등등 일침을 가하곤 의기양양해 했었다.

 대입 학력고사 준비 이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시절 그래도 한 가닥 숨통을 틔어주는 것이 대학입시와 거의 상관없던 한문수업이었고, 당시 한문선생님은 홍안백발(紅顔白髮)의 외모로 늙기를 소망하는 호기 넘치는 분이셨다. 중국고사와 현자들의 이야기로 흥미진진한 수업을 진행해 주셨기에 나에겐 최고의 인기선생님이자 유일하게 기다려지는 과목이었다.

 그러던 5월의 어느 수업시간, 광주5.18은 일부 고정간첩에 의해 발생한 폭동으로 굳게 믿고 있을 정도로 잘 교육된 모범생이었던 나에게 몇 가지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이야기는 그렇게 새롭지도 엄청난 것도 아니었다. “백성은 단순한 통치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백성민자 위에 뿔을 상징하는 한 획을 더 그어놓고 이는 백성의 뿔이라는 것이다. 정치를 잘 못하면 백성이 그 뿔로 권력자를 들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그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교육받고 있던 시기에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피 흘리지 않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주어진 경우는 없다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뿔 달린 백성과 피를 먹고 자란다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당시의 나에겐 매우 충격이었으며, 이 두 단어가 결국 우리사회의 현실문제에 눈을 뜨게 된 계기였다. 그 후 대학생들의 시위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감이 줄어들었고, 명문대학일수록 데모도 많이 한다 즉 대모 못하는 학교는 삼류다. 라는 내 나름의 현상분석에 기초한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입학과 함께 난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하지 않는 곳에 민주주의는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준 영웅호걸의 기풍과 풍모를 지녔던 한문선생님의 말씀이 신보수 친기업정부를 맞으며 다시 생각나는 것은 과거의 아픈 추억 때문 많은 아닌 것 같다.

송재봉(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