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이야기

불교방송 성탄특집서 만난 세 성직자

송재봉 2008. 12. 26. 00:59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불교방송 성탄특집서 만난 세 성직자

서울시장 재임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던 장로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성탄절을 맞았지만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 문을 걸어 잠그고 부수는 ‘그들만의 국회’는 반목과 질시가 팽배한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는 데는 종교도 한몫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체 종교를 매도할 일이 아니라 정치인을 닮은 종교인들을 탓해야 한다.
아니 이 모든 것을 ‘내 탓이오’라고 돌리고 자신부터 돌아보는 것이 참된 종교의 자세일 것이다. “세상이 어둡다고 탓하지 말고 당신의 작은 촛불을 켜라”고 말한 테레사 수녀처럼.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많은 이들은 종교로부터 위안을 찾고자 한다. 성탄을 맞아 ‘낮은 데로 임하소서’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이 시대에 필요한 종교적 사명에 대해 취재했다.

 
 
▲ 사진 왼쪽부터 천주교 청주교구 총대리인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 삶터교회 김태종 목사, 청주 관음사 주지 현진스님.
성탄절인 12월25일 청주불교방송에서 이례적으로 성탄특집방송을 편성했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이 진행한 이날 특집방송의 제목은 ‘온누리에 자비와 사랑을(오전 8시~8시45분·녹음 21일)’이었다. 기획 의도는 ‘성인의 탄생은 종교를 떠나 축하하고 기념할 일인 만큼 축하메시지를 나누고 종교 간 화합과 평화에 대해 얘기해 보자’는 것이었다. 

출연자는 천주교 청주교구 총대리인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 삶터교회 김태종 목사, 청주 관음사 주지 현진스님이었다.

김태종 목사는 “힘든 한 해였다. 내년 역시 희망으로 맞이할 수 없어 더 어둡다. 이러한 시대에 종교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색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며 말문을 열었다. 현진스님은 “불교방송을 통해 성탄을 축하할 수 있어 기쁘다. 찬미 예수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심으로 찬미하고 축하한다”며 덕담으로 받았다. 장인산 신부는 “성탄은 예수가 구세주로 이 땅에 와서 인류구원을 시작한 날이라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성탄의 의의에 대해 밝혔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세상은 어디를 봐도 동질감보다는 차이를 부각시키고 편을 가르는데 이들 3명의 성직자들은 정말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소통한 것일까?

현진스님은 성경 구절을 인용해가며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통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마태복음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소유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해탈의 가르침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현진스님은 “이런저런 타이틀에 집착하지 말고 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그 것이 종교인들이 사명이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부끄러운 줄 모르면 유치해져”
얘기는 자연스럽게 유난히 종교 간 갈등이 심했던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쪽으로 흘러갔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서로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려는 정치와 종교에 대한 비판이었다. 김태종 목사는 “개신교 지도자가 국가의 수장이 됐다는 것은 자랑스러워야 할 일인데 지금은 패권주의자가 수장이 됐다는 생각이다. 부끄러운 줄 모르면 한없이 유치해진다. 이런 집단주의는 사라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장인산 신부도 “한 가정의 부모가 어떤 자녀만 편애하지 않고 모든 자녀를 안아주듯이 국민을 고루 사랑하는 지도자가 돼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 세우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신부는 “특정 종교인이 지도자가 됐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을 두려워할 줄 아는 민족이다. 다 복 받을 가능성이 많은 백성들이다”라고 덧붙였다.

현진스님은 “하나님의 진정한 권위는 교회 밖에서 더 이뤄져야 한다. 국가지도자가 중립을 지키지 않아 ‘종교차별금지법’까지 거론됐던 것이다. 국민통합이 최우선이다. 직위를 이용한 편향은 사라져야 한다”고 밝혔다.

“아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나?”
성직자들이 내놓은 종교갈등 해소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생각보다 쉽고 간단한 것이었다. 일단은 종교인들이 그동안의 모습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계기가 됐다는 ‘자기반성’에 모두 공감했다.

현진스님은 “종교인들도 인사하고 교류하면 융화되기 마련이다. 아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는 없다. 교류가 갈등해소의 길이다. 청주에서만이라도 신도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태종 목사는 이에 대해 “가장 어려운 것이 개신교일 것이다. 그래도 한 번 해보자. 모든 종교를 서로 존중하는 것부터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자”고 맞받았다. 김 목사는 또 “예수님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문고리’였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열어가는 눈길이 필요하다. 세를 확보하고 거대한 상징물을 만들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종교의 경쟁적인 세 불리기와 대규모 종교시설 건립 경향에 대해 비판했다.

“힘들 때 더 필요한 것이 종교”
힘들다고 말할수록 더 힘들어지는 것이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씨크릿>에 나오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3명의 성직자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하고 그래서 더 종교역할의 중요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현진스님은 “종교가 위안과 희망, 마음의 의지처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테레사 수녀님을 존경한다. ‘세상이 어둡다고 탓하지 말고 당신의 촛불을 켜라’는 그 분의 말씀처럼 자신의 촛불을 켠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이 환해지는 것 아니겠냐”고 해법을 제시했다.

장인산 신부도 “인간은 고생과 고통, 죽을 고비를 넘기며 태어난다. 인내력과 강인함은 그때부터 생기는 것이다. 현재의 모든 문제를 악(惡)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이겨내면 단단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자. 이 또한 신의 섭리”라고 거들었다.

김태종 목사는 “종교도 너무 경제에 치중했다”는 역설로 말문을 연 뒤 “종교는 느리게 사는 여유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균등한 기회를 주고 있음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어려운 시대에 정신적 행복을 얻는 지혜에 대해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