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권과 자치/자치행정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문제와 개선방향

송재봉 2009. 11. 30. 01:12

지방행정체제 개편

지방분권과 주민참여 확대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송재봉(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1. 당사자가 배제된 지방행정체제 개편논의

국회는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합의하였다고 하는데 개편의 당사자이자 주체인 지역 주민은 개편의 취지도 방향도 이유도 알지 못한다.

현재의 기초자치단체 행정구역이 작다는 것이 국회의 입장이지만 지역에서 풀뿌리 자치를 하기에는 현재의 행정구역과 인구가 너무 크다는 것이 일발적인 시각이다. 또 부분적인 행정권역의 조정이 필요한 지역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도 존재한다.

국회에 입법발의 된 법률안이 제시하는 300∼100만(60~70개)으로 광역화가 지역발전과 지방자치 정착에 긍정적일 것이란 근거가 희박하다. 그러나 왜 행정구역을 광역화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 개편부터 하자는 것은 주민 참여와 자치를 핵심원리로 하는 지방자치 정신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

광역화 하면 행정의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 효과가 있을 것이란 것은 가정에 불과하며, 왜 인구 3만 정도 되는 자치단체가 있으면 안 되는지 근거 있는 설명이 필요하다.

2.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문제점

지방행정체제 개편관련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보면 “기초단체 행정구역 광역화와 광역자치단체 폐지를 통한 행정계층 축소”로 모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폐지된 광역자치단체를 대신하는 광역행정청의 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와 광역자치단체 폐지의 시기와 방법을 일시에 추진할 것인지 단계적으로 접근한 것인지, 기초자치단체를 광역화 할 경우 어느 정도 규모가 적정한지, 기초자치단체의 수는 몇 개로 할 것인지 등 각론적 측면에서의 논점도 상당부분 존재한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목적이 국가 정책의 효율적 추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참여에 기초한 자율적 결정이라는 민주주의 확장과 지역의 특성과 장점을 살린 다양한 지방정부의 운영을 통한 내생적 지역발전 실현에 있다는 관점에서 현행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행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행정의 능률성과 민주성의 조화를 통한 주민의 삶의 질 개선이라 할 때, 지금 진행중인 행정체제 개편논의는 행정의 효율성 측면만 강조되면서 지방자치의 핵심원리인 민주성을 약화시키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1) 광역단체 폐지론의 문제

현행 자치계층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중층화 되어 있거나 복잡한 상태가 아님에도, 자치계층 축소론자들은 뚜렷한 근거도 없이 행정비용의 절감으로 저비용 고효율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행 자치계층에 대한 비판론은 한국의 자치계층이 대단히 복잡하여 중첩에 따른 비효율이 야기되고 있으며, 중앙정부와 주민간의 의사전달에 왜곡이 생길 수 있으며, 행정의 책임성확보가 곤란하고 책임회피의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하여 도를 폐지하여 계층을 1계층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치계층을 축소하는 경우에 절차의 중복은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지만 다른 폐단은 없는지, 업무의 중복을 다른 수단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지가 문제된다. 기존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간 기능중복이 문제라면 기능 재편을 통해서도 개선 가능한 문제라는 것이다.

도를 폐지하거나 분할하면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중앙집권적 정치문화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현 광역자치단체 하에서도 중앙권한 이양에 인색하고 지역의 중앙정부 종속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60만~100만 규모로 축소할 경우 지방의 중앙예속화가 심화되고 실질적 지방분권은 후퇴할 것이다.

둘째, 도를 폐지하는 경우에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기 어려운 기능을 모두 국가가 처리하게 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경향이 현저하게 증가된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것은 보충성의 원칙에 지켜지는데 있다. 그리고 보충성의 기능은 성격에 따라 처리할 능력과 역량이 다른 다양한 크기의 지방정부를 전제로 한다. 이점에서 도를 폐지하면 오히려 비효율과 중앙집권적인 경향이 증대될 수도 있다. 특히 특별지방행정기관을 지방으로 이양하는 경우에 대부분은 도에서 수행하여야 할 기능으로 볼 수 있으나 도를 폐지하면 결국 국가기능으로 남을 수밖에 없어 분권화에 역행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현재의 16개 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고 70개의 광역자치단체간 조정기능을 중앙정부 담당하게 되면 중앙정부는 업무의 효율성을 이유로 권역별 국가 광역행정청이 설치할 수밖에 없어 행정계층 축소의 효과는 사라지고 자치계층만 한 단계 축소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즉 행정의 효율성은 개선되지 못하면서 주민의 참정권만 축소하게 될 우려가 크다.

셋째, 도를 폐지하면 그동안 도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사적, 사회적, 심리적, 문화적 동질성의 토대가 무력화 된다. 지역의식이 소멸되고 주민의 정체성에 손상을 가져온다. 지방자치가 향토애를 기초로 지역발전과 문화적 정체성을 신장하고자 하는데 있다면 도의 폐지는 공동체의식 약화를 가져온다. 도의 역사가 오래되는 만큼 이를 해체하는 것은 적지 않은 손실을 수반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방자치의 선진국에서도 오랜 경험상 지방자치의 계층을 2계층 혹은 3계층 등 다계층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시․도의 폐지로 나타날 부작용이 작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도를 폐지하거나 분할하여 자치계층을 단층제로 하려는 구상은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자치계층 축소론자들이 주장하는 다층제의 폐단은 대부분이 시․도와 시․군․자치구의 업무가 중복적으로 수행되어 나타나는 폐단이다. 따라서 도의 폐지 대신에 시․도와 시․군․자치구의 권한과 기능의 재배분으로 업무의 중복과 비효율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도는 기초지방정부의 기능수행에 관련된 보완적 기능과 지원, 조정기능을 중심으로 수행하고 광역적인 규모를 필요로 하는 대규모 발전계획 등을 수행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국가가 현재 수행하고 있는 많은 기능을 시․도로 이관하여 지역적인 다양성에 적합한 지역발전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기초자치단체 광역화의 문제

현재 논의되는 기초단체 광역화 안은 2005년에서 2006년에 걸쳐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에서 구상했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40~70개로 광역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여러 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통․폐합하겠다는 방안이다. 이를 통하여 행정경비의 절감과 경쟁력제고, 망국적 지역감정해소, 정보화사회촉진, 규모의 경제 실현, 지역간 분쟁해소와 공동사업 활성화 등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론자들은 행정구역 개편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거나 가볍게 다루는 반면에 검증되지 않은 장점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주장을 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적정규모를 유지하지 위하여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는 것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부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첫째 자치단체 규모의 광역화는 풀뿌리 민주주의 후퇴와 주민참여 기회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 이질적인 행정구역간 통합과 자치구역의 광역화는 교통 통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접근성과 일상적인 참여기회의 확대를 가로 막는 장벽을 만들고, 다수 주민의 무관심은 지방정치에 있어 소수 지배엘리트 집단의 지방권력독점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둘째,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존재하는 시`군`구 자치단체를 인위적으로 통합할 경우 지역간 대립과 갈등을 유발하고, 단체장 선거 때마다 소지역주의가 발호하고 인구가 적은 지역은 정치적으로 고립되거나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역통합의 효과보다 지역갈등 유발효과만 키우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규모를 지역의 특성이나 산업구조, 인문․지리적인 환경 등을 고려함이 없이 획일적으로 결정하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농촌지역과 산간지역, 대도시지역과 군소지역, 해변지역과 내륙지역 등 주어진 환경과 주민들의 삶의 양식에 따라 적정규모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획일적으로 통합하려고 하는 경우에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규모의 경제 대신에 규모의 불경제로 인한 비효율이 나타날 수도 있다.

셋째, 시ㆍ군ㆍ자치구가 통합되어 광역화되면 주민과의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가까운 정부로서 주민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야할 기초 지방정부가 사라지고 주민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지면 주민들의 구체적인 생활문제는 추상화되고 주민의 불편은 가중된다. 그렇게 되면 주민들의 작은 생활문제까지 모두 통합광역시로 몰리게 되어 풀뿌리 자치 기반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넷째,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구역이 주민의 정체성 내지 공동체의식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를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주민자결을 통하여 향토애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나아가서 주민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랜 기간 동안 하나의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으로서 형성된 향토애나 결속력은 금전과 환산하기 어려운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이룬다. 이를 역사적인 뿌리나 향토적인 결속을 무시한 채 통․폐합하려고 하는 것은 문화적인 정책의 관점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국토를 규모에 맞추어 획일적으로 구획하려는 것은 비문화적인 토목적 발상이다.

다섯째, 행정구역 통․폐합을 통하여 실현하려고 하는 규모의 경제도 수행해야 하는 기능에 따라 적정규모가 천차만별이라고 할 수 있다. 광역적으로 처리해야할 기능도 있지만 쓰레기 처리나 주차장의 조성과 관리, 소규모 체육시설의 설치와 관리, 영유아 보육시설, 노인시설 등은 작은 공동체에서 공동체정신을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기능도 적지 않다. 이러한 기능을 광역적인 규모의 지방자치 단체가 수행하는 경우에 오히려 규모의 불경제가 나타날 수 있다.

여섯째, 행정의 비효율이 심화될 것이다. 행정구역 광역화는 자치단체의 숫자는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실질적인 행정권역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지역간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조정의 어려움, 일방통행식 행정결정으로 인한 지역주민과 자치단체와의 갈등심화로 행정의 효율성보다는 비효율과 비민주성만 강화될 것이다.

3. 몇 가지 쟁점에 대한 의견

세계지방자치 선언(1993년 6월 토론토, 세계지방자치단체연맹 총회)에서 지방자치단체를 강화하면 좀 더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공공정책이 가능하게 되어 국가 전체가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방자치원리 제4조 현재 지방자치단체의 보호 2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경계변화는 법률이나 법에 의해 허용된 주민 투표의 방법을 포함해 지방공동체나 관련된 다른 공동체와의 협의를 통해 이루어 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지방자치단체 경계변화는 정부나 정치권이 필요에 의해 자의적인 법률제정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해당지역 당사자의 의견을 우선적으로 반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1) 지방행정체제 개편 / 현재 우리나라 기초단체 규모는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 큰 편이며, 주민의 직접참여에 의한 민주적 지방자치 운영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 광역자치단체의 폐지는 결국 지방분권의 약화, 기존 광역시 중심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와 발전 가속화라는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 할 것임.

2) 시‧군‧구의 통합기준과 통합추진 대책

시‧군‧구 통합기준은 ① 행정구역의 기형성으로 주민 불편이 심각한 지역(청주 청원, 전주 완주 등), ② 지역주민의 자율적인 통합 여론이 형성된 경우, ③ 지리적 환경의 변화로 광역시·도 및 기초자치단체간 경계의 불합리함으로 인해 지역주민의 생활권과 행정권이 불일치하여 지자체간 부분적인 구역조정이 필요한 경우 등은 정부가 일정한 기준을 정하여 해당지역 주민을 대항으로 주민투표 실시하여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함.

3)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정해 인위적으로 행정구역을 광역화하는 것은 지방자치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것으로 반대함. 기존 지방자치 2계층제 유지 원칙 속에 광역과 기초의 사무 재배분이 필요함.

4) 풀뿌리 자치 부활을 위한 읍·면·동의 법적지위, 권한, 기구 등

풀뿌리 자치의 핵심은 주민의 자기 선택권과 결정권임. 따라서 읍·면·동자치 부활의 핵심은 읍 면 동장의 주민직선이라 생각함. 그러나 현재 발의된 법안에는 이러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고, 현재의 주민자치위원회의 기능 보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읍·면·동 자치의 부활이란 표현을 적절치 않음.

5) 통합을 위한 주민투표의 특례

행정구역의 광역화는 지역주민의 생활여건의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하는 문제란 측면에서 충분한 찬 반 논의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행정구역 통합은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정당공천제하에 있는 지방의회 의견만으로 통합절차를 추진한다는 것은 지방의회의원이 중앙정치에 종속되어 있는 현실에서 주민의 의사가 의원의 의견과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볼 때 이는 결과적으로 심각한 주민의견 왜곡을 낳을 수 있다.(현재 청원군의 경우 주민은 50%이상이 통합에 찬성하지만 의원은 전원이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6)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방향

자치구역의 설정은 자연공간의 공유, 지역공동체의 형성, 능률성, 주민편의성, 자치능력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지 경제적 가치에 기초한 규모의 경제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지방행정구역 조정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지역주민들의 의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정부는 행정구역의 합리적 조정에 주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통합지자체에 일정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주민의 뜻이 통합에 있음에도 단체장의 이해관계에 의해 주민의 의사가 무시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주민 발의에 의한 지방자치단체 통합 및 지방자치단체 경계 재설정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여 불합리한 행정구역 조정을 촉진할 필요는 있다.